‘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30~40년 전엔 어딜가나 흔히 듣던 귀에 익은 구호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한 가정에 5~6남매, 심지어 9~10남매씩의 자식을 두던 게 예사였다. 너나없이 지지리도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지만, 지금처럼 피임이나 임신중절 등은 엄두도 못냈다. 하늘이 점지한 자식을 억지로 피하는 건 순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조상님께 대한 엄청난 불경으로 여겼다. 그래서 가족계획 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피임약 등을 주어가며 산아제한 홍보를 해도 좀체 들으려고도 안했다. 십중팔구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심할 경우 동네 어른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그런데엔 순리를 지키려는 뜻 외에도 나름대로 또 다른 속사정이 있기는 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전 못해 질병에 의한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 보니,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낳아야 그중 몇 자식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훗날 노동력을 불린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을 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몇 남매씩 두고 있는 가정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식이 많이 깨어있는데다 끈질긴 가족계획 홍보 덕도 있겠지만, 의학이 발전해 질병 사망률 또한 크게 줄어 굳이 많이 낳을 필요성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리라. 특히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육아문제가 큰 장벽으로 작용, 출산율이 떨어졌고 결혼연령이 높아진 것 또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산아제한은 절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시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 지금은 되레 출산율 급감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4~5명이던 평균 출산율이 83년 2.1명, 99년 1.42명으로 급격히 낮아지더니 급기야 지난 해엔 1.3명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현재의 인구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 즉 대체출산율 2.1명에 크게 미달함은 물론 이런 추세라면 2020년 이전에 인구 감소가 시작될 전망이라고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노동력 부족이 불가피해지고 덩달아 국가경쟁력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우려다.
출산율 저하는 산업분야의 생산력뿐 아니라 각 분야의 역동성을 훼손,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젊은층 증가율이 노령인구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해 노인들을 부양해야하는 젊은이들의 각종 사회비용 부담이 크게 느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자식없이 노후를 보내야 하는 외로움 또한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라도 가족계획을 다시 세워 다산(多産) 권장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프랑스처럼 출산·육아보조금 등을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여성들의 출산·육아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라 생각된다. 출산율 저하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도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여성들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출산기피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우선 일하는 중에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 영·유아가 대략 300만명이라지만 보육시설 인원은 기껏해야 70여만명에 그친다고 한다. 여기에 사회 곳곳에서 출산에 대한 배려는커녕 되레 이를 빌미로 퇴직권유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여성들이 경제활동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가 지속돼선 곤란하다. 출산·육아를 당사자와 함께 국가 및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의식을 보편화시킬 필요가 있다. 출산·육아의 부담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여성들의 출산 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 출산·육아수당 지급뿐 아니라 국가나 기업 등의 보육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출산 장려대책이 시급하다. 여기에 편함만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출산기피 풍조도 빨리 없어져야함은 물론이다.
결국 우리의 인구정책은 산업화 이전의 옛날로 다시 돌아가야할 판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산아제한을 한사코 거부하던 옛 어른들의 숨은 뜻이 이제 비로소 조금 이해될 듯도 싶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미래 인력의 위기
입력 200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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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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