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열렸던 좀 기괴한(?) 축구경기가 요즘 자주 머릿속에 떠오른다. 전반전 내내 심판이 좀처럼 ‘휘슬’을 잘 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양팀 선수들이 경기규칙을 잘 지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쪽 팀에서 거친 플레이를 더 많이 구사(驅使)하여 관중들의 야유를 샀던 걸로 지금 기억된다. 그러다가 후반전에 들어서 심판의 태도가 표변했다. 숨 돌릴 틈 없이 빈번하게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경기가 거의 끝나 갈 무렵에 이르러 그의 ‘휘슬’은 더 한층 불을 뿜었다. 아마 짐작하기에, 그 심판은 당초 호루라기를 자주 불면 경기가 재미없어 진다고 판단하여 그걸 자제하다가 관중들의 반발에 부딪치자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이번엔 과도하게 ‘휘슬’을 남발하는 결과를 빚게 된 걸로 보인다.
이렇게 좀 이상한 ‘휘슬’소리가 요새 국내 사회에 범람하는 듯하여 짜증도 나고, 또 좀 안타깝기도 하다. 그 임기라야 채 반년도 남지않은 김대중(金大中)정부를 향해 이른바 소신발언이란 너울을 쓰고 무차별적인 공격들이 감행되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의 각종 비난의 목소리는 으레 그런 것이려니 치고, 보수(保守)성향의 언론 논객들에, 또 각양각색의 학자군(學者群) 발언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정부 두들겨 패기에 이골들이 나 있다. 예서 더 가관(可觀)인 건, 정부출범 초기만 해도 납짝 엎드려 있던 기업계 사람들 마저 눈초리를 팽팽히 한 채로 정부쪽에 대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서둘러 분명히 해 둔다면, 나는 여기에서 정부비판의 사실 그 자체를 흠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전반전에선 ‘휘슬’ 근처에도 손을 가져가지 않다가 후반전, 그것도 정권의 해가 다 저문 임기말에 이르러서야 이러니 저러니 호루라기 소리를 시끄럽게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김대중 정부에겐 마지막 책무 한가지만 남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아직 정리가 다 안된 경제현안의 실타래들을 어서 정리하고,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중립의 입장에서 원만하게 치러내는 일이라 할 만하다. 이런 이른바 ‘레임덕’정권을 겨냥하여 어떤 경영자단체의 장(長)은 고색창연한 목소리를 냈다. 정부조직이 너무 비대하여 가령 기업들에의 간섭도 많아졌다고 그는 힐난했다. 그러니 지금 이 판국에 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런 이야기는 조금 참았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 꺼내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경기 막판의 귀 따가운 호루라기 소리들은 또 계속된다. 그 경영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교육개혁의 필요성도 역설했는데, 이런 논의도 한참 타이밍을 놓친 것이긴 마찬가지이다.
이 대목에서 더 언짢은 것이 이른바 시장(市場)의 논리란 것과 교육의 문제를 연계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라 할 만하다. 시장의 논리란 걸 인류의 정신세계에까지 원용(援用)하려는 건 천박한 노릇이다. 시장 만능주의의 폐단은 주5일 근무제 논의에서도 나타난다. 대기업 쪽 사람들은 정부가 졸속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서둘러 일컬어 시장경제의 틀을 파국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주5일 근무제란 것도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하고, 정부가 나서 강압하지 말라고 한다. 아마 이렇게 되면, 한국의 노동시장에 더 큰 혼란의 회오리가 몰아쳐 오게 될 걸로 짐작된다. 기업들마다 노사(勞使)간의 갈등은 물론 노(勞)와 노(勞) 사이의 충돌도 격화할 염려가 있다.
주5일 근무제를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임금도 좀 줄어야 하고 휴가일수도 축소되어야 하리란 게 경영계 주장이기도 한데, 이걸 필자에게 번역하란다면 제도 자체를 철회하자는 얘기로 귀결된다. 한마디로 잘라 말해서, 오늘의 국내 사회현실에서 임금 깎고 주5일제를 하잘 근로자는 거의 전무하리란 것이 필자의 예측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란 것과 관련해서도 기업들의 정부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것도 아무려면 임기 댓달을 남겨 놓고 정부가 철폐할 걸 기대한단 말인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제도의 존폐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문어발 확장 버릇이 오롯이 고쳐진 다음에나 가능할 일이다. 어찌 되었거나, 김대중 정부엔 이제 ‘휘슬’을 부는 대신 일련의 마무리 작업들을 독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덕중(논설위원.경원대 겸임교수)>김덕중(논설위원.경원대>
이상한 '휘슬'소리
입력 200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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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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