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는 다음 시대를 생각하고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말한 사람은 JF 클라크이다. 정치인이 하는 일은 국리민복과 백성을 편안하고 잘살게 하는 일이고 정상배가 하는 일은 권력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권을 챙기는 일이란 것을 생각할 때 이처럼 정치인과 정상배를 잘 구분해놓은 명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에서도 사리와 당리당략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Politician'이라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인을 뜻하는 'Statesman'에 비해 다소 경멸적인 표현이다. 우리가 흔히 자신을 남에게 잘 보여 일을 성공시키거나 이득을 얻으려면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듯이 미국에서도 'Politic'(정치역학관계)을 잘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정상배는 어느시대 어느나라에도 있어 왔다. 흑인의 노예해방문제로 촉발된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부로 가서 새로 해방된 남부의 흑인들과 손을 잡고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도 북부인 정상배들이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유신때 총을 팔아 거부가 된 오쿠라는 당시 대표적 정상배라 할수 있다. 오쿠라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이후 조선에서 정치적 후견인을 자청하며 친일 매국노 송병준을 앞세워 부산에서 고리대금업과 무역업을 하며 떼돈을 번 케이스다. 이처럼 정상배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신경을 쓰는 부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국감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정치판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어떤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 경제와 민생을 걱정하며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을 처음부터 기대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 흠집 내기와 책임 덮어씌우기, 막가파식 공격에 저격수와 나바론팀 구성 등 전쟁용어까지 등장하는 살벌한 정치판을 두고 누가 정치인의 행동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국민들은 그런 정치행태에 신물이 나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눈에는 오로지 대통령 선거만이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목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정권쟁취다.
따라서 정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목표가 국리민복에 우선할 수는 없다. 이를 외면한 정권쟁취노력은 사리 당리만을 취하기 위한 것 외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들은 여야가 민생과 국가경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김대중정부 집권 4년 반동안에 이러한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성 싶다.
여야 모두 여론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 대해서는 의혹을 부풀리는 한편 나의 잘못은 아전인수격으로 자화자찬하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민심이나 여론의 성격은 국가적 장기 플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장기적이고 범국가적인 차원의 정책과 상황판단으로 대결해야 한다. 그런데도 민심이란 이름아래 여론에 휘둘린다면 국가적사업이 갈등을 빚고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여론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대중의 감정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정치를 사회심리학적으로 연구한 월터 리프만은 이러한 여론의 비합리성을 지적, 합리적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대중은 진실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왜곡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 자기 나름의 좁은 경험의 테두리에서 그것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무시하고 자기가 읽은 바에 대해 편향된 의미를 부여하는 고정관념(스테레오 타이프)에 사로잡히고 이것이 곧 잘못된 여론으로 형성되는 일이 많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이같이 리프만이 규정한 여론의 성격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기의 잘못이나 실수는 하나도 없는데 모두가 상대당의 잘못 때문에 국정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왔다는 논리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 거린다고 한다'라는 우리 속담은 이러한 여야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오로지 대선승리라는 당리와 다음 총선을 위한 공천 및 자리 보장이라는 사리를 위한 정치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국민을 위해 대선을 치르는 것인지 정치인들을 위해 대선을 치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정치인과 정상배를 구분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오는 12월의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정치인과 정상배의 차이
입력 200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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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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