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은 ‘쇼’라고 경기 하다 말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 레슬링 선수가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어서 정확한 장면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아마 당시 박치기로 유명했던 ‘김일’이란 강자에게 그 박치기를 당해 패전했던, 그 무렵 프로레슬링계의 2인자쯤 됐던 사람이 ‘링’ 밖으로 내려 서면서 그렇게 고함쳤던 걸로 회상된다. 그뒤로 한껏 인기를 끌던 프로레슬링이 차츰 낙조(落照)의 길로 빠져들기 시작한 걸로 나로선 기억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수들의 동작 하나씩이 터져 나올 때마다 환호하던 대중들로서 그게 죄다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쇼’였을 뿐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 어찌 허탈감과 함께 배신의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지금 왜 난데없이 ‘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누구라 할 것없이 이땅의 모든 성인(成人)들이 눈들이 아플 만큼 목격하고 있는 노릇이지만, 요즘 세상이 온통 진실이라곤 없는 허위의 ‘쇼’들로만 미만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다가 이 사회가 오로지 허위의식들로 가득한, 가공의 잿빛 연극무대로 전락하여 사람들마다 가령 꼭두각시 인형극 배우 흉내를 내게 되는 건 아닌지 나로선 별의별 망령의 그림자가 다 연상됨을 고백해 두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한편의 연극일 뿐이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다지만, 연극도 연극 나름이지 사람들의 삶의 행간엔 그래도 좀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숨 쉴 수 있을 만큼 진실들이 묻어 나와야 할 걸로 생각하는 건 필자만의 감상일까. 각설하고, 두달 뒤면 또 다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데 그 이른바 대권경쟁이란 것에서도 나는 도무지 ‘진실’같은 걸 체감하기가 어려움을 말해 두고 싶다. 후보들마다 수사(修辭)들이 화려하다. 또 그 캠프들 마다에서 뿜어내는 변설과 공약들이 휘황찬란하여 누구를 뽑아도 나라가 곧 ‘유토피아’로 떠오를 듯한 환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이야기를 뒤집으면, 결국 모두가 진실이라곤 없는 불꽃놀이 ‘쇼’ 같은 환영(幻影)만을 대중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이렇듯 대선(大選)경쟁이 일관되게 허위의식 같은 것들로만 팽배하다간, 대중이 등 돌려버린 프로레슬링 이상으로 한국정치란 건 말 그대로 철저히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란 게 나의 예측이다. 새삼스러울 게 있느냐, 이미 정치는 대중의 관심권 밖으로 추락해 있다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정도가 아니게 될 것이다. 미래의 대통령에게 가령 현직 대통령을 혐오하는 이상으로 국민들이 경원의 느낌을 갖게 된다면, 내가 짐작하기로 그는 틀림없이 ‘대통령’ 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좀 직설적으로 얘기를 풀어 보면, 가령 이회창(李會昌)후보 같은 이는 근자에 들어 그의 이른바 정치노선이란 게 허공에 뜬 채로 마치 무슨 애드벌룬인 양 나날이 허황해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원래 보수(保守) 쪽이었다면 끝내 그 기치(旗幟)를 붙잡고 있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 될 성 싶다. 지지율이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하여 개혁 쪽에도 기웃거리고, 또 젊은층 표(票)가 아쉽다고 신촌의 햄버거 가게에 나타나 자신이 ‘보수’ 일변도가 아니라고 ‘쇼’를 일삼다간 게도, 또 구럭도 다 잃게 되리란 것이 나의 ‘메시지’인 것이다. 당초 그의 이른바 '대쪽’ 이미지란 건 헌신짝처럼 버려진 듯한데 이건 결정적 실수가 될 것이다. 강직한 법치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북핵(北核)이 다시 문제되는 등 세상이 또 어지러워지고 있음에야 더 말할 것이 없다.
노무현(盧武鉉)후보 지지율하락을 이유로 들어 후보단일화를 부르짖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텔레비전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나와 있는 어떤 대선후보의 정치이념도 노(盧)후보와 별반 다를 것이 없고, 따라서 양심 가책 같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그나마 노(盧)후보의 이른바 정치노선이 다른 후보들과 개혁적이란 점에서 차별화를 이루고 있는 걸 그가 호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몽준(鄭夢準)씨의 경우, 그는 오롯이 새로 떠오른 무슨 탤런트 같은 체취다. 정체성 같은 건 그만 두고라도 그는 가령 ‘월드컵’ 이미지로만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 같아 씁쓸하기가 여간이 아니다. <김덕중 (논설위원·경원대 겸임교수)>김덕중>
'쇼'를 넘어서
입력 2002-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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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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