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개개인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인간활동 가운데 최고의 고귀한 활동으로 규정했고 또 아테네 사람들도 정치 현안이 있을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민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고 한다. 이는 정치 참여가 다른 어떤 사회활동보다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도 지금 우리 민족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분수령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어떤 기대나 흥분보다는 떠밀리듯 투표소로 가야 하는 의무에 그저 떨떠름한 것 같다.
TV에서 열변을 토하는 후보자들의 연설이나 신문 광고에 나오는 그들의 공약들이 모두 가슴에 와닿지 않고 허공만 맴돌고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 공방이나 북핵문제와 이에 따른 색깔론 시비, 듣기에도 섬뜩한 '전쟁이냐, 평화냐' 그리고 '안정이냐 불안이냐'는 이분법적 선거 캠페인도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교묘한 형태의 지역감정, 사이버 공간상의 폭력, 중간지대를 인정하지 않는 선택의 강요 등 이런 것들이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 유권자들은 앞으로 5년 동안 국가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한표를 행사해야 한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 지도자를 국민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 선택행위 자체를 바르게 해야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옳게 행사하는 일이 된다. 그 권리를 옳게 행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민주시민이라 할 수 없다. 선택은 중요하고 그 결과에는 당연히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므로 더욱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한표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선거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숨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건국이래 우리를 괴롭혀온 권위주의 정치와 지역주의를 담보로 한 3김(金)정치에 대한 실질적인 청산의 시험대라서 그렇다. 이번 선거야말로 다른 어떤 선거보다 외압이나 지역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닌 명실상부한 국민의 소신에 의해 치러지는 선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다원주의와 개인화 등 변화의 시기인 21세기를 맞아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세계화 시대에 탄탄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사회, 열린 시민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모든 이에게 법이 평등하게 살아 숨쉬는 사회로 말이다. 이래서 한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방적인 게임은 아닌 듯하다. 선두를 다투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두 당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투표일에 가까워질수록 무응답 및 부동층이 오히려 늘어나는 희한한 현상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 비율도 2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번 대선의 투표율은 80.7%로 5명 중 1명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기권도 일종의 정치적 의사표시라지만 정치적 소신에 의한 기권이 아니라면 마땅히 투표는 해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나라가 분단돼 있고 주변국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도자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또 우리처럼 정치의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대통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어서 한표의 의미가 더욱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은 남은 시간이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게 좋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아울러 내가 던지는 한표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후보들도 그렇고 유권자들도 같다. 투표를 앞두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겸허하고도 차분하게 행동을 정리하고 생각과 판단을 마무리하자. <송인호 (논설위원)>송인호>
한표의 의미를 생각하자
입력 2002-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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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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