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다수당인 야당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난국은 여러분의 협력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저도 모든 것을 여러분과 같이 상의하겠습니다. 나라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금년 1년 만이라도 저를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98년 2월25일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거창한 국정 청사진으로 가득 차는 게 보통인 대통령 취임사에서 ‘읍소’에 가까울 정도의 표현으로 여야 협력을 당부하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쟁의 연속이었음은 물론이다. 중간 중간 대화와 타협은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새 정부의 총리 내정사실을 야당에 통보하고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회담을 제의하는 등 대야(對野) 관계에서 이런 식의 ‘낮은 자세’가 일단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엊그제는 양당의 총무도 만나 국정협력 합의도 했다. 유세 때부터 노 당선자는 낡은 정치를 깨고 새 정치를 시도하겠다고 누차 강조한 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에 모처럼 생기가 돌 것 같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번 만큼은 5년 내내 대권을 잡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식의 정치는 이제 곤란하다는 인식이 여·야 모두에게 깔려 있는 듯도 하다. '섀도 캐비닛'을 두고 정책을 세워나가면서 공통적인 국가적 사안에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이상적인 의회정치의 모습을 꿈꾸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태까지 의회민주주의보다는 정치판에서 일상화된 투쟁의 역사(?)에 익숙해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늘상 보는 것은 정치인들이 마치 유도선수 아니면, 시정잡배들처럼 치고 받고, 멱살잡이 하는 등 살벌한 모습들 뿐이었다. 요즘도 여당은 살생부 파동으로, 야당은 당내 개혁 등으로 일부 의원들의 경우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 전사들과 다름 없다.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느라 민생은 제쳐두었고 국정은 난맥이라는 질타와 탄식의 소리를 늘 들어왔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었다. 그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상생(相生)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필살(必殺)의 정치를 꿈꾸어 왔음을 이제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통치권력을 차지하는 자들만이 모조리 차지하는 오랜 독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재체제 아래에서 권력분배의 틀을 바꾸려는 시도는 역적질에 해당할 정도로 용납되지 않았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정치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아직도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 이제 그런 틀을 깨려는 순간에 와 있다.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 분권형 총리 등도 이같은 권력의 분배구조를 통해 독재화를 막자는 취지일 것이다.
상생(相生)의 정치는 최근 10년 이래 정권 출범 초기마다 거의 1회성 구호처럼 상용돼왔다. 지속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서로가 '죽기 살기'식의 싸움을 했기 때문에 상생하지 못하고 공멸(共滅)할 수밖에 더 있었겠는가. 대통령 선거 이후 우리 사회는 보혁(保革)의 갈등이 표출되고 이로 인한 국론분열의 조짐마저 표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같은 갈등구조를 막기 위해서도 서로를 감싸고 끌어안는 관용의 정치를 펴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고 선의의 경쟁과 서로를 존중하는 미덕이 중요하다. 노무현 당선자는 상생정치를 지향하는 최근 일련의 행보들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으며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도 당장의 다수에 만족하지 말고 국정협력의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골목대장들이나 벌이는 골목정치에서 벗어나 신작로처럼 확 뚫린 '큰 정치'와 절반의 패배를 수용해 양쪽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상생의 정치를 바라고 있음을 정치인들은 직시해야 한다. 정치가 편하면 나라가 편하고 국민들의 얼굴도 펴지게 마련이다. <이준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