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담배 이름으로 유명한 '러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라는 말이 있다. 번역하면 '행운타'(幸運打)이지만 무슨 뜻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시쳇말로 옮긴다면 '대박'이라는 말과 뜻이 통한다. 지금 이 나라에는 로또 광풍이 몰아쳐 온 국민이 대박 꿈에 흥분해 있다. 저마다 돈벼락을 맞겠다며 로또를 합창하며 그 행렬에 뛰어든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서부지역 곳곳에는 '골드 러시'가 벌어졌다. '노다지'를 찾아 금광업자와 광부들이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몰려 들었다. 신흥촌에는 술집과 도박장이 들어서고 도둑과 창녀가 들끓었다. 사기꾼과 사채꾼에다 총잡이까지 끼어 들었다. 서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어느날 금맥이 끊기면서 찬 바람이 몰아치고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 황량한 폐광촌에 웬 사나이 둘이 나타났다. 술집에 들러 어디 가면 금이 있느냐고 소리쳐 묻자 술잔으로 시름을 달래던 어떤 건달이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저 산꼭대기에 가보라고 말이다. 금은 다른 물질보다 비중이 높아 지층이 낮아야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을 믿고 그곳으로 달려간 얼간이들이 괭이로 치자 금이 쏟아졌다고 한다. 금이 안나올 곳에서 나왔다고 해서 '러키 스트라이크'라는 말이 생겼단다.
로또도 '러키 스트라이크'를 닮은 모양이다. 당첨확률이 벼락 맞은 나무가 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단다. 1등 당첨확률은 0.00001%라니 뒤집어 말하면 탈락확률이 99.99999%이다. 일확천금의 꿈은 언제나 헛꿈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당첨확률이 영(零)에 가까우니 1등 당첨자가 연속해서 안나오고 당첨금은 눈덩이처럼 불어 1천100억원에 육박한다. 그 도박판이 지금 로또를 사면 고층 빌딩의 주인도 될 수 있다고 손짓한다.
IMF 사태이후 빈부격차가 가위곡선처럼 점점 더 벌어진다.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살기가 버겁다. 저축한들 금리가 낮아 돈이 불지 않는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내집 마련의 꿈은 무지개처럼 멀어졌다. 마흔만 넘으면 언제 백수대열에 낄지 모른다. 봉급의 절반을 과외비로 쏟아 부어야 아들, 딸을 대학에 보낼까 말까하다. 벤처 붐이 불 때는 자본도 기술도 권력도 없어 끼지 못했다. 이제 푼돈 가지고도 돈벼락을 맞을 수 있다니 로또에나 희망을 걸자. 저마다 춘몽에 빠진다.
새 천년의 개막을 알리는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벤처 붐이 터졌다. 무수한 닷컴이 쏟아지는가 했더니 온통 벼락부자의 이야기였다. 20, 30대의 주인공이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떼돈을 벌었다는 따위였다. 벤처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고 코스닥은 돈 공장인 양 온 세상이 들떠 있었다. 벤처기업의 요람인 서울 테헤란로는 불야성을 이루고 술집여급이 귀동냥해서 벤처주식을 샀다가 팔자가 폈다느니 하는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김대중 정권은 흥분해서 한술 더 떴다. 벤처기업은 21세기 한국경제의 산실이니 수만 개를 만들어 육성하겠다면서 정책자금을 동원했다. 그곳에서 돈냄새가 풍기자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게이트'라는 이름의 숱한 의혹사건을 연출했다. 그 돈잔치는 금광촌의 혼돈과 광기를 닮은 그들만의 축제였다. 인류미래의 영역인 인터넷과 생명기술 분야에서 기술개발의 성공확률은 백만분의 단위라고 한다. 그런데 한탕했다는 꿈 같은 소리가 밑도 끝도 없이 들렸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이 있었던 것이다.
벤처 열풍은 쌈짓돈까지 빨아들일 만큼 열기를 뿜던 코스닥에 한파를 몰고 온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보격차라는 말로 40, 50대를 활동무대에서 몰아내 버렸다. '흰머리'라는 이유로 해고의 과녁이 된 것도 억울한데 컴퓨터 문맹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성장의 주역이 어느날 소외지대에서 좌절감과 박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계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런 세상에 김대중 정권이 천민자본주의의 본산지인 라스베이거스판 복권을 수입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24종의 복권을 발행하고 있는데도 모자라는지 7개 부처가 연합하여 미국에서 로또를 들여온 것이다. 정권이 나서 판돈을 키워 사행심을 조장함으로써 전국민을 상대로 푼돈 놓고 떼돈 따라고 놀음판을 벌인 꼴이다. '인생역전'이라는 선전문구도 환각적이다. 상실감과 박탈감에 젖은 국민에게 로또로 신분상승을 꾀하라고 유혹하니 말이다. 전국민이 로또로 피박쓸 참이다. 더 늦기 전에 노동가치와 근로의욕을 짓밟는 로또를 없애라. / 김영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