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촉매제로서 소비를 얘기하면 오해받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소비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니까 말이다. 그러나 소비를 적절한 타이밍으로 잘 활용하면 사랑의 매개체로서 더없이 고마운 수단이다.

한 번은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여러분, 요즘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 맞지요?” 라고 물었더니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일제히 “네!”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번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선물했는데, 만약 상대방이 다음 번 화이트데이 때 아무 것도 선물하지 않으면 어떡할래요. 계속 만날 겁니까, 아니면 절교하겠습니까?”했더니, 대다수의 여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뭣하러 만나요. 당장 절교할거예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물론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선물 하나 안한 걸로 절교까지 갈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콜릿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사탕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좋아질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간혹 연인들 사이, 부부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 때도 소비행위를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사랑을 회복시킬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싸움 끝에 화풀이로 술을 엄청나게 마신다든가, 가재도구를 때려 부순다든가 하는 행위는 사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약간 다른 방법으로 소비행위를 이용하면 사랑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래 전부터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한 것이 커플상품이다.

커플 티셔츠나 커플 귀고리에서부터 커플 청바지, 커플 팬티까지 다양하다. 싸움 끝에 서로 감정이 악화된 연인이나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용기를 내어 커플상품을 선물해보자.

약간의 서먹함도 잠시, 오히려 사랑은 싸움 전보다 더욱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사회이론에 보면 테크놀로지(Technology)결정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유사한 상품을 사용하다 보면, 서로 다른 의식일지라도 한 방향으로 의식이 수렴된다는 이론이다.

이론을 증명하는 예로서 자동차를 들 수 있다.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간에 자동차라는 유사한 물품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과 행동이 일치된 것을 볼 수 있다.

파란 신호등이면 직진하고, 빨간 신호등과 횡단보도 앞에서는 정지하고, 좌회전을 할 때는 좌측깜박이를 넣고, 우회전을 할 때는 우측 깜박이를 넣는다. 얼굴 생김새와 생활환경이 달라도 자동차라는 매개체에 의해 통일된 의식과 행동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든 원동력 중의 하나가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응원이었다. 그 때 우리 나라는 온통 붉은 응원티셔츠를 입고 붉은 응원 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온 국민은 길거리, 직장, 가정에서 하나된 응원을 펼쳤고, 모두가 한 핏줄이라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붉은 티셔츠라는 유사한 상품이 사람들간의 끈끈함과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 것이다.

앞서 말한 커플 상품의 사용, 축구 응원에서 붉은 티셔츠의 사용 등은 작은 소비가 사랑과 정열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좋은 예이다. 이런 소비행위를 가족간에 적용하면 가족들의 유대감은 훨씬 강해지고, 직장에 적용하면 마찬가지로 사원간 연대의식이 강화된다.

작은 소비행위를 통하여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유대감을 더욱 강화하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소비의 미학(美學)이 아닐 수 없다.
- 권원기 (신흥대교수, 한국소비자연맹 경기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