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17일은 미국의 역사를 뒤바꾼 사건, 즉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대통령 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이날밤 수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5명의 괴한이 침입했다가 체포된 것이다.

백악관의 돈·지글러 대변인은 '단순한 3류 절도사건'으로 평가절하 했지만 수사결과, 전직 중앙정보국 요원도 포함된 범인들의 침입목적이 도청장치의 설치임이 밝혀지자 경찰과 검찰은 긴장했다.

이어 워싱턴 포스트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의 잇단 특종보도 등 언론의 끈질긴 추적으로 범인들이 닉슨대통령의 3대 핵심참모이자 비선조직의 총책인 찰스 콜슨의 부하임이 밝혀지자 하마터면 단순절도 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권력의 불법공작사건으로 번졌다. 사실 당시의 국민과 여야는 이들의 범행동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닉슨은 여러차례의 대국민 성명과 회견을 통해 자신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전혀 모르며 백악관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했으나, 국민의 의혹이 날로 심상치 않자 연일 참모회의를 열어 진화대책을 서둘렀다. 그런데 사건 은폐의 책임자였던 존 딘 백악관 법률고문이 면소(免訴)를 조건으로 상원청문회에서 닉슨이 범인들의 입막음용 자금지원 등 불법적인 은폐를 지시했고, 그 사실은 백악관의 녹음테이프에 수록돼 있다고 폭로해 국민을 분노케 했다.

닉슨은 이를 부인하고 CIA로 하여금 FBI(연방수사국)의 수사저지를 지시하고 의회와 대법원과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에 완강히 맞섰으나 압력이 더욱 강화되자 테이프 제출, 봅 할데만 비서실장과 존 엘리히만 보좌관 등을 해임하며 변명에 급급했으나 끝내 20여명의 참모들의 유죄판결로도 해결이 어렵자 1974년 8월8일 대통령직을 사임, 권좌에서 내려왔다.

미국 국민들이 닉슨에 대해 가장 분노한 것은 온 국민의 스승이요, 사부(師父)인 대통령이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해 국민을 속인 것과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을 준수해야 할 인물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당시 닉슨의 연설문 작성자이자 훗날 포드, 레이건, 부시, 클린턴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거건은 “사건 직후 닉슨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검찰 또는 특검으로 하여금 철저한 조사를 지시, 규명했더라면 국민은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듭된 거짓말과 은폐 기도로 비극을 자초했다”고 술회했다.

닉슨은 뛰어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규명하지 않고 구구한 변명을 계속, 국민의 눈총을 받았고 94년 사망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대북 뒷거래 송금 의혹과 워터게이트 사건은 추구했던 목적과 사건의 성격과 과정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필자가 31년 전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헌(國憲)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뻔히 알면서도 법을 어기고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또 국민을 오랫동안 속여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교류협력에 합의한 것은 분단 55년 사상 획기적인 업적으로서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었다. 하지만 회담 직후부터 “정상회담이 거액의 대가로 이뤄진 것”이라는 설(說)이 꼬리를 물었고 미의회의 한 연구원은 북한이 그 자금을 신무기 도입에 썼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럴때마다 펄펄 뛰며 부연으로 일관했던 DJ와 청와대가 작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불법성금 얘기가 제기되고 올 들어 감사원이 2억달러 송금을 확인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DJ는 14일 대국민성명을 통해 국익과 남북관계를 위해 송금을 허용했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또, 이틀 뒤 정몽헌 현대상선 회장은 북한과 7대사업권 획득을 위해 5억달러를 보냈으며 송금은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해명에 대해 국민은 오히려 증폭된 의혹과 함께 혼란을 느끼고 있다. 모두 얼마 송금키로 했고, 3억달러는 어떻게 마련, 환전해서 어떤 경로로 송금했나, 정식 계약도 않고 사업권 약속만으로 거액을 보낼 수 있나, 왜 정상회담 전 송금을 서둘렀고 정말 대가성은 없는 것인가, 불법단체인 북한과의 뒷거래만이 최선의 방안이었나, 모든 거래 내역을 밝히지 못할 속사정은 무엇인가?

DJ는 꼭 1주일 뒤면 청와대를 떠난다. 그는 오래 전부터 국민을 하늘처럼 모시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해왔다. DJ는 국정을 책임졌던 최고책임자로서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 국익을 위한다면 퇴임 전에 정상회담과 대북송금의 전모를 문건으로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 아니면 스스로 소명을 위해 검찰 또는 국회의 특별검사 운영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무현 새 정부는 장차 남북간 거래와 협력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은 DJ의 결단, 용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