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호랑이의 튀기 '라이거'는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열성(劣性)이다.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도 그렇고 암나귀와 수말 사이의 잡종이자 노새와는 사촌간인 '버새'도 그런가 하면 수퇘지+암소의 혼혈인 '매기'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가까운 개만 해도 중앙선을 넘어 혈통이 섞이면 그 몰골부터가 기품이 떨어지고 질적으로도 한두 단계 팍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출생한 튀기 2세가 다시 흰둥이와 결혼해 태어난 혼혈아, 즉 4분의 1로 유전인자가 희석된 '쿼터 튀기' 중엔 유달리 수재와 천재 우성(優性)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카드룬'이라는 혼혈 수재, 잡종 천재들이다. 흑백 혼혈뿐이 아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엔 백, 흑, 황, 갈, 회색 등 무려 1천여 인종의 온갖 혼혈 2세, 3세들이 도도한 인파를 이룬다. 그런 미국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 of races)'라 일컫는다.
한데 미국의 힘은 바로 그 '혼혈의 용광로'에서 솟구친다. 미국을 또 '샐러드 사발'이라고 하는 것도 가지가지 채소가 범벅이 돼야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그 숱한 인종의 아종(亞種)과 변종(變種)의 도가니에서 나오는 힘이 오늘의 미국을 이끄는 것이지 이른바 와스프(WASP)라는 순수 백인들만으로는 어림없는 얘기다.
그러니까 88년 대통령 후보였던 그리스계 듀카키스 같은 비(非) 백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미국과 맞섰던 옛 소련의 파워도 그 수가 절반도 안되는 슬라브 민족을 비롯한 150개 인종의 도가니로부터 철철 넘쳐흘렀다.
그곳 역시 90년 소련 대통령 선거에서 '발렌틴 최'라는 한국인이 보리스 옐친과 경합을 벌였듯이 비 슬라브계가 러시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캐나다, 중국 등 다민족 국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페루의 후지모리, 미크로네시아의 나카무라 같은 사람이 어느 나라 대통령으로 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단일 민족이다. 그래서 곤란하고 그래서 안된다. 우리는 뭔가 부족하고 어딘가 늘 모자란다. 개별적으로야 한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알 같지만 그런 모래알의 응집이 안되고 파워풀 팀워크의 요소가 결여된다.
그런 모래알을 위해선 무엇보다 강력한 철근이 필요하고 보드라운 시멘트 가루가 절실하고 눈물 같은 수분이 불가결하다. 그래야 콘크리트 파워가 뻗친다. 우리에겐 인종의 잡종화(mongrelization)와 인종의 결합(interracial intimacy)이 시급하다. 절묘하게도 영어의 'race, racing'(경주)은 인종을 뜻하기도 한다.
인종이란 경쟁하고 싸운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단일 인종으로는 어렵고 싸움이 안된다. 춘원(春園) 이광수의 '민족성 개조론'이 아닌 '혼혈 한국' 건설을 앞당겨야 한다.
월드컵 한국 사령관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1승 아니면 잘해야 16강에 그쳤을지도 모르고 1천650억 흑자의 함박웃음은 반의 반으로 찌그러들었을 것이다. 그 때 관중석엔 '히딩크 대통령'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머리 속에 온통 축구공만 가득할 그가 설마 대통령까지야 될까마는 적어도 그런 사람의 귀화가 필요하고 그보다도 잘나고 잘난 사람들이 들어와 대통령이 된다 한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일본의 예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이제 우리의 축구 감독과 선수는 물론 농구 배구 등 거의 모든 스포츠에 외국인 용병이 없이는 팀이 안된다. 대기업 외국인 경영자가 늘어가고 항공사 외국인 기장만도 수백명이라고 들었다. 중소기업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주저앉고 결혼도 동남아 여성이 아니면 못하는 총각이 늘어간다.
국제결혼 장려가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국제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에 있어 교잡설(交雜說)을 주장한 J P 로티는 이제 몇 세기 안에 인종 개념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만큼 인종의 혼혈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땅의 혼혈화가 1세기만 앞당겨졌어도 마치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저런 무모하고도 가련한 북한의 모습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검둥이나 흰둥이, 기타 혼혈 외국인 용병이 대구 지하철 사령실이나 기관사 자리에 앉았더라도 이토록 기가 막히다 못해 땅을 치는 주먹이 으깨질 한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경제, 스포츠, 문화 등 이미 우리의 모든 문이 개방됐듯이 '혼혈 한국'이야말로 시급한 과제다. 그런데 아무리 귀를 씻고 어제의 노(no) 대통령이 아닌 로(rho)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어봐도 그런 대목은 들리지 않으니 안타깝다 할까 답답하다 할까. /吳東煥(논설위원)
混血 국가' 건설을 앞당기자
입력 2003-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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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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