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사건 특검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한창이다.

해결책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중진이 머리를 맞대는 '청와대 회동'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지난달 26일이다. 대화와 타협을 전제한 다수결 존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이 이번에도 예외없이 정쟁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열렸어도, 개혁과 변화가 대세인 사회가 개막됐어도 우리 국회는 여전한 구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특검법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노 대통령의 중재로 해소될지, 아니면 여야 전면전으로 비화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정당 스스로 국회의 권위와 역할을 포기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는 국민권력의 한 축이다. 국회는 국민이 선출한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을 견제할 유일한 국민대표기관이다.

국회는 입법과·예산심의·동의권을 발휘해 대통령의 국가 운영을 견제하고 협조함으로써 당면 국가과제나 현안에 대한 국민의사를 관철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이든 내각책임제를 실시하는 나라이든 국민대의기구인 의회가 제역할과 권위를 상실하면 통치권의 전횡과 정쟁만 횡행하게 된다.

또 '국민의 대표'라는 명예를 포기한 채 집권세력의 통법부로 전락한 국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의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선진국에서는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각종 참사의 후진성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고발하는 처절한 증거들이다.
 
시대가 변화와 개혁을 원하고 있다. 방법과 절차에 대한 견해차에 불구하고 '이대로 안된다'는 슬로건 앞에선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됐던 시대의 종식'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의 청산'을 강조한 것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국정원, 국세청, 검찰, 경찰 등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던 기관의 정상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찬가지로 국회도 변해야 한다. 아니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의회 존재의 가치와 목적이 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가치를 실현하고 목적을 구현하려는 본연의 의정활동이 없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민주당이 노 대통령에게 대북송금사건 특검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강요하는 것은 국회의 기능과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학적 행태라고밖에 할 수 없다. 특검법 처리를 전후해서 노 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밝힌 바 있다.

스스로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 차원에서 새 대통령의 전향적 국회관(觀)을 환영하는 한편, 국회도 스스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더군다나 특검법안 표결과정에서는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이 소신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지고 일부 의원들은 기권으로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는 새로운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정작 여당인 민주당은 표결에는 참석조차 안한 채 특검법안이 통과되자마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함으로써 스스로 국회를 폄훼하고 구태의 늪에 빠트리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민주당은 표결 직전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옳았다.

표결 전에는 대화에 불성실하고 후에는 결과를 부정하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청한다면 국회는 무슨 수로 입법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겠는가. 특히 특검법 반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보호와 민주당내 신·구주류의 화해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맞다면 본질과 대의를 외면하고 사족(蛇足)과 사익(私益)에 집착하는 구태에 다름 아니다.

현재 거론되는 특검법안의 수정내용이 진정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표결 전에 야당을 설득시켰어야만 했다. 그리고 야당이 끝내 고집을 부려 국익과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부분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정당은 각자의 입장에서 국익을 다툴 수밖에 없고 특정 정당이 국익대변을 독점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따라서 정당들은 상호존중 속에 존재해야 하고 그래야 국회가 제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수결 존중의 원칙을 발휘하는 본연의 기능을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 국회가 없는 정부 주도의 개혁은 반쪽 개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