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도 유행이 있나보다. 한때는 동남아에서 보신관광이니 매춘관광이니 해서 말썽을 빚더니 요즈음은 명품관광이 붐이라고 한다.
파리나 로마에서는 한국인들이 떼지어 유명 상품을 싹쓸이하느라고 난리란다. 여기에다 철따라 피서여행이니, 골프여행이니 해서 공항은 연일 붐빈다. 방학 중에는 대학생의 배낭여행마저 늘어나 공항은 만원사례다. 달러화의 약세로 환율이 떨어지자 해외여행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봇물 터진 해외여행 탓에 작년 12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단다.
지난 3년 사이 해외여행자가 급증하고 있다. 2000년 550만8천명, 2001년 608만4천명이었는데 지난해는 712만3천명으로 전년보다 100만명 이상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여행수지 중에서 일반여행 부문의 적자가 크게 증가했다. 2000년 2억9천760만달러, 2001년 12억3천300만달러로 증가추세를 보이다 작년에는 37억7천380만 달러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여기에다 유학·연수 부문의 적자 14억920만달러를 합치면 지난해 여행수지 적자규모는 51억8천300만달러로 늘어난다.
세일한다는 소문만 나면 유명 상표 사재기에 나선 한국인들로 매장마다 북새통을 이룬단다. 값, 모양, 크기, 색깔을 가리지 않고 싹쓸이한다고 한다. 루이비통 같은 상품은 한 사람에게 한 개씩만 팔기 때문에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에게 수고비를 주고 사달라고 부탁하는 진풍경도 연출한단다.
관세청에 적발된 여행자 휴대품을 보면 쇼핑여행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짐작된다. 작년 한해 동안 세금을 안내고 휴대품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된 고가사치품이 무려 60만4천565건이나 된다.
전년보다도 23.2%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란다. 카메라 11만1천420건, 보석 및 귀금속 2만2천475건, 핸드백 5만7천475건, 고급주류 22만5천655건 등이다. 이 중에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상품이 수두룩하단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설을 타고 국제유가가 요동친다는 점이다. 전쟁이 터지면 국제유가가 1배럴당 50달러까지 뛴다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가 치명타를 입는다는 소리다. 원유와 관련제품 수입가격이 급등하여 물가가 폭등한다. 세계경제의 침체로 수출은 급감한다.
IMF 사태이후 흑자를 구가해 오던 경상수지가 올해는 상황전개에 따라 엄청난 적자로 돌아설 처지다. 위기적 상황이 예상되는 데도 나몰라라 해외여행은 여전히 흥청망청이다.
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외환위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1997년 11월 어느 날 갑자기 한두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터진 사태가 아니다. 경제정책의 누적적 실패가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정책결정자에게 있지만 일반 국민이라고 책임이 없지 않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으니 곧 부자나라가 된다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낭비생활을 일삼았다. 기업은 무분별한 해외투자를 벌였고, 많은 국민들은 해외 나들이에 달러를 물쓰듯 했던 것이다.
OECD에 가입했다고 외환-자본거래를 대폭 자유화하자 외화유입이 급증하면서 원화가치가 절상됐다. 환율이 내려가니 수출은 감소하는데 수입이 증가하여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했다. 그것을 메우자니 외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늘어나는 외화유입으로 인해 해외부문에서 통화가 팽창하여 물가상승을 무겁게 압박했다. 언제 빠져 나갈지 모르는 투기성 자금인데도 감당하기 어렵자 외화유출책을 쓰기 시작했다.
외화가 넘치니 그것이 빚인지도 모르고 너나 없이 흥청거렸다. 모든 경제주체가 도취상태에 빠진 모습이었다. 계 들고 빚 얻어 비행기에 올랐으니 말이다. 외환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데도 너나 없이 외화를 헤프게 쓰더니 결국 IMF 사태를 맞고 말았다.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에 외환보유고는 39억달러에 불과했다. 그 낭비벽이 다시 도졌는지 공항에는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지난 1월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1천229억달러로 풍족한 편이다. 하지만 그 중의 상당액은 빚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화강세로 수입물량이 크게 늘고 있어 무역수지에 비상이 걸렸다. 올 들어 2개월 연속해서 적자를 나타낸 것이다. IMF 사태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다 석유파동도 우려되는 상황인데 사치성 해외관광으로 외화는 펑펑 새나가고 있다.
해외여행을 직접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반입품 한도액을 엄격히 적용해서라도 불건전한 쇼핑관광에 대해서는 규제해야 한다. 여행자의 휴대품이 이삿짐을 닮았다면 세관행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김영호(시사평론가)
경상수지 덜미 잡는 해외관광
입력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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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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