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검사가 된 것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각종 범죄자들이 많지만 가장 사악(邪惡)한 것은 권력과 권한을 악용해 뇌물을 받고 국민의 혈세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해 부정축재한 정치인, 고위 공무원, 기업인 등 거악(巨惡)들이다.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울리는 정경유착범, 권력형 범죄자들인 거악들을 퇴치하는 게 나의 필생의 목표다.”
“검찰은 늘 배가 고파야 한다. 그리고 사회를 감시하는 날카로운 눈을 지녀야 한다. 검찰은 국민과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국민의 관점에서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정치·사회의 움직임과 경제의 흐름을 지켜보면 반드시 거악들의 모습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988년 5월15일. 일본 국민들은 60대 노신사의 부음을 전해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마치 국왕이 서거한 듯 애도의 물결이 전국으로 번졌다. 바로 수년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가 선거운동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도 국민들은 한 정치지도자, 한 정치파벌 보스의 사망 정도로 여겼지만 이번 경우는 전혀 달랐다. 국장을 치르도록 해야한다는 국민적인 애도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언론들은 연일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특집을 보도했다.
고인의 이름은 이토 시게키(伊藤榮樹).
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 검찰에 발을 디딘후 40여년간 검사로 봉직, 검사총장(검찰총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가 몇개월 만에 사망한 것이다. 사실 이토처럼 검사로서의 외길을 걸은 사람들이 많음에도 국민들이 유달리 그를 추모하는 것은 평생을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정경유착 등 권력형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일에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그에 대해 현역 시절에는 '국민의 검사, 면도칼 이토'라는 별명을 붙였고 사망하자 '국민의 검사 눈을 감다', '진짜 검사 별세', '거악들의 염라대왕 가다' 등의 큰 제목을 붙였다. 앞에 인용한 글은 퇴임후 이토가 신참검사들에게 '검사의 바른 길'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특강의 내용으로서 국민을 대신한 법의 수호자, 집행자로서 검사의 자세와 해야할 일들을 의미있게 지적하고 있다.
신임 법무장관의 파격적인 인사추진에 검찰 내부에서 반발하자 정부수립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TV생중계로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을 벌여 화제가 됐다. 토론에 대해 '파격적이다', '신선한 시도다', '노 대통령식의 스타일이다'라는 긍정론이 적지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경우 대통령의 위신과 권위도 그렇지만 책임총리와 장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유명무실화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검찰개혁의 최대 과제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의 확보다. 사실 우리나라 검찰은 오래전부터 '정치'라는 중병(重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집권자들은 말로는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는 권력유지와 정권운용의 필요에 따라 검찰을 이용해왔다. 또한 검찰의 상당수 수뇌진들은 미묘한 사건 때마다 공정한 법집행보다 청와대쪽 눈치를 살폈는가 하면, 인사때면 여당 중진들에게까지 청탁하는 끈끈한 권·검관계를 유지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검찰청법의 모델은 일본의 검찰청법이다. 이름서부터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은 검사의 인사권으로 우리는 법무장관에게 있는 반면, 일본은 검사총장에게 있다. 따라서 일본검찰은 국민이 원하고, 또 불법의 기미만 있으면 언제나 독자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위법에 수사외면이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어떤 거대한 부정사건이라 해도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하면 국민은 안심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숱한 권력형 비리사건중 검찰이 정말 제대로 수사했다고 국민이 믿었던 사례는 거의 없다.
성격은 다르지만, 대북송금의혹사건을 정치권의 협의대상이라고 수사를 유보한 것은 넌센스다. 통치권 행사를 강변하지만 대통령과 관계참모, 현대상선측이 남북협력법안 등 여러 실정법을 어기고 송금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수사유보'라고 한 것은 직무유기다. 게다가 나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수사하겠다는 것은 무슨 해괴한 논법인가?
이제 앞으로 집권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하고 장차 법을 고쳐 인사권을 총장에게 넘겨줘야 한다.
아울러 검찰은 스스로 대오각성, 환골탈태해서 완전히 독립된 자세로 법과 국민의 눈치만을 보는 새로운 검찰로 출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쯤에나 이토와 같은 국민의 검사를, 어떠한 사건도 손을 댔다하면 처리결과에 만족하고 존경할 수 있는 국민의 검찰을 만날 수 있을까?/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이성춘칼럼]검찰독립과 국민의 검사
입력 2003-03-18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3-18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