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신문중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신문의 순기능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미국 3대 대통령 제퍼슨의 경구다.
그러나 임기말에 들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 신문기자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정보에 더 잘 접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게 차라리 잘 못 하는 것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신문불신론을 폈다.
요즘 말이 많은 참여정부의 언론관을 보노라니 시사해주는 바가 큰 대목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론의 비판기능이 살아있는 한 집권자들은 언론에 불만을 갖게 마련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도 노(老)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한 참모들이 아예 국내 신문을 멀리 하도록 했다. 신문비판에 대한 불만은 없어졌지만 그만큼 세상물정에서 점점 소외됐음은 물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급 정보를 보고받으면서도 신문을 꼼꼼히 챙겼고 비판적인 기사에 대해서는 장관들을 야단쳤다. 자연스럽게 권력기관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를 틀어막는데 큰 비중을 두어 '남산'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는 언론인이 많았던 시절이다.
전두환 정권때는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숙정을 통한 언론통제의 체계화 시대로 이른바 '땡전 뉴스'가 정형화됐던 암울한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언론자율화를 이룬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러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되살아나는 등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까지 이르게 된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도 아픈 비판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잘 참아낸 편으로 평가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전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겠다'하고 취임후에는 또다시 '악의적 오보에는 차별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달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좀 빼달라' '고쳐달라'해왔고 앞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써줄 것을 기대해서 자주 만나 소주파티를 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등의 로비 방법으로 대응해 왔으나 앞으로는 인간적 관계를 통하지 않고 정정보도 및 반론 청구 등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12일 홍보수석실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오보와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반론보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신청과 민·형사상의 대응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창동 문광부장관은 한술 더 떴다. 직원들의 업무공간보호를 이유로 기자의 사무실 방문취재를 금지하고 필요하면 취재지원실에서 공무원을 만날 수 있으며 취재당한(?) 직원은 그 내용을 일정한 양식에 맞춰 보고토록 의무화했다.
이른바 '지침'을 내린 것이다. 기자실 폐지에 심지어 이 장관은 '쓰레기통을 뒤져 발견하면 쓰라'고까지 했다. 노 대통령도 지침을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제지에 나섰지만 이쯤 되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 이외에는 보도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 이제 기자는 '받아쓰기'만 잘 하면 될 판이다.
물론 특정 언론이 공무원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정보를 독점하려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권력이 먼저 변화함으로써 언론개혁을 유도해 나가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정부의 '오보와의 전쟁'이 '비판적 언론과의 전쟁'이 될까 두렵고 정부정책의 문제를 모두 언론의 잘못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 정부가 언론과의 비정상적인 유착관계를 단절하고 원칙대로 하겠다는 대전제에는 일단 환영한다. 언론의 기능은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를 감시하기에 언론과 권력간에 긴장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잘못된 정책집행을 차단하기 위한 여론의 여과과정을 어떻게 거쳐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언론개혁을 빌미로 기자들의 손과 발을 묶고 펜을 꺾겠다는 의도와 다름없어 보인다.
국민의 참여 속에 국정을 이끌고 가겠다는 참여정부는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주는' 자료만을 '받아쓰라'는 식을 강요하는 듯한 새 정부의 언론관은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이준구(논설위원)
참여정부의 '받아쓰기(?)' 언론관
입력 200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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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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