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주는 밥을 먹고 병에 걸려 생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서만 벌써 1천명 이상의 학생들이 식중독 세례(?)를 받았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 밥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이 모양인가. 교육부의 대책은 더 한심하다. 학교 조리실에 조리담당자들의 사진과 이름을 게시해 사고를 예방한다고 하니, 앞으로 사고가 나면 포스터나 현수막을 내걸겠다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에서는 현재의 학교급식 제도가 구조적으로 사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급식사고는 졸속행정이 초래한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강조한다. 현재 전국 1만363개 학교 중 9천989개 학교가 학교급식을 실시중이다. 이 가운데 1천874개 학교가 급식업체에 학교급식을 위탁하고 있다.

급식 업체에 시장을 제공한 것이다. 업체들로서는 급식의 질과 안전 보다는 수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돈드는 양질의 음식재료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 철저한 위생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저렴한 급식 단가에 맞춰 이익을 추구하려니 더욱 그렇다.

최근 발생한 식중독 사고가 대부분 위탁급식 학교에서, 직영급식이 정착된 초등학교 보다는 위탁급식 의존도가 높은 고등학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수도권에서도 직영의지가 강했던 경기도에 비해 위탁 의존도가 높은 서울에서 대형 급식사고가 빈발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런 실정에서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학교급식 정책을 거부하고 제도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50여개 시민단체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학부모들이 지난해 말 '학교급식 전국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학교급식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즉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위탁에서 직영으로 운영원칙 변경, 정규직 영양사 배치, 국가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체제 확립, 지자체 급식조례 제정을 학교급식법에 명시함으로써 학교급식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전남도의회와 전주시가 우리 농산물 사용을 위한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일부 학교 현장에서 비용문제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산물 전용을 모색하는 것도 부실한 정책으로 부터 자녀를 보호하려는 자구책의 일환이다.

학교급식법 개정 운동만 성공해도 공적인 급식안전망 구축은 상당한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학교급식에서 거론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 뿐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관점에서도 학교급식의 질적 개선은 중요하다.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산물, 그것도 안전한 우리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심고 소비를 유도하는 일을 더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입 밀가루에 길들여진 풍토에서 우리 밀이 설자리를 잃었듯이, 어린 세대들이 외국 농산물과 가공식품에 길들여지면 우리 농업은 미래가 없다. 최근 유기농가들이 학교급식을 우리 농업 살리기의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안전한 우리 농산물의 생산 및 소비기반을 학교급식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많은 전문가들과 학부모, 시민단체들이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수반되는 예산을 국가나 지방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정을 책임진 행정부와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고, 지역 실정에 맞는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할 지방정부가 앞장서야 할 현안이다.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학교급식 사업이 국정과 도정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국회는 학교급식법 개정을 위한 여론 수렴 작업에 즉각 나서야 한다. 또한 정부와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는 유기농가와 학교급식 현장을 연결하는 '생산-소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와 시범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 학교급식은 본래의 목적을 망각한 채 비교육적 행정으로 안전 사각지대에 봉착해 있다. 학생들을 먹이는 급식사업에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모두 학교급식에 대한 발상과 정책을 전환시켜야 할 때가 됐다. 학교급식 정책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에 대한 공적 투자 차원에서 입안되고 집행되어야만 한다. 물론 조리실에 관리자 이름표를 붙이는 식의 탁상 전시행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