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부(國父)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취임한지 수개월후부터 언론(신문)과 갈등을 빚었다. 그는 신문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고 화를 낸 반면 신문들은 '국가 경영에 관한 능력이 부족하다', '권위를 내세우며 임금(王)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병든 마음을 가진 사기꾼이자 매국노'라고 공격했다. 이에대해 워싱턴은 겉으로는 침묵했지만 각의에서는 “기자들은 국사(國事)를 방해만 하려는 나쁜놈들”이라고 자주 욕설을 퍼부었다.
20세기 들어와 미국의 역대 대통령중 언론으로부터 가장 인기가 높았던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였다. 대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한 루스벨트는 재임중 무려 990여 차례나 회견을 하는 등 기자들과 수시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국정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해주는 대신 반드시 자기가 표현한 용어와 문장으로 기사를 쓰게 했고 어길경우 대화에서 제외시켰다.
케네디가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라는 기치를 내걸고 취임하자 기자들은 케네디 신드롬에 빠진 오빠부대이자 열광적 팬으로 돌변했다. 참신한 인상에다 화려한 수사(修辭)를 구사하는 그는 오빠부대를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마음껏 전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언론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한 인물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상·하원 의원과 부통령 시절도 그렇지만 대통령에 취임하자 거의 모든 언론이 공격을 퍼부었고 닉슨 역시 물러섬이 없이 언론과 전쟁을 벌였다. 언론은 그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하고 비열한 음모꾼이자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진후 은폐기도 사실이 드러나자 공격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도 언론을 국정추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고 자기방식대로 다루려는 시도를 했었다. 강압적이었던 유신과 5공때는 물론 노태우·김영삼 정부가 그랬고 김대중 정부는 대대적인 세무사찰이라는 융단폭격을 감행했지만 언론을 장악하는데는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후 이례적으로 언론(주로 신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눈길을 모으고 있다. “언론에 대해 간섭은 없을 것이며 나도 전화하지 않겠다”, “정부는 언론과 유착하지도 않을 것이며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겠다”, “정부가 깨끗해지려면 언론과 약간의 긴장 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언론관이 구체화하자 언론과 많은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각 부처 기자실의 폐지-개방화,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 등의 브리핑룸 설치, 기자들의 사무실방문 취재금지, 취재에 응한 공무원의 사후보고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종래와 같이 기자들의 자유로운 공무원 접촉취재를 사실상 제한·금지하고 대신 브리핑룸 운영으로 정부관련 뉴스의 창구를 일원화하려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의 원칙을 감안하면 참으로 놀랍고 걱정스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부의 언론정책중 기자실의 폐쇄, 개방화 등은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할 여지가 많다. 브리핑이라는 게 질(質)과 내용(수준)도 문제지만, 정부의 취향과 의중에 있는 내용만 할 것 아닌가.
오보(誤報)를 막아야한다면서 자유로운 취재의 영역과 방법을 크게 제한하는 것은 명분·논리 모두 설득력이 취약하다. 미국 등에서 브리핑룸을 활기있게 운영한다지만, 미국은 아울러 국민이 요구하는 정보를 국가 안보와 사생활의 비밀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공하는 정보공개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정보공개법은 유명무실화한 상태아닌가? 정부의 방침대로 실시한다면 자칫 오보와 추측보도가 양산(量産)되어 사회적 불신과 혼란을 야기시킬 여지가 적지 않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늘 불편하다. 언론은 끊임없이 감시·비판하려는 속성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반면, 권력은 비판을 싫어하면서 언론을 경계하며 기회가 있으면 콧대를 꺾으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권력과 언론의 유착은 민주발전을 저해하고 부정부패를 낳게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긴장관계는 당연하다.
다만 늘 언론도 영향력을 오용(誤用)하거나 횡포·교만을 버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반성을 해야하지만, 권력 역시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하지 말아야 하며, 무엇보다 비판에 대해 늘 수용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노대통령이 해야할 국정현안은 산적해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언론과 피곤한 마찰은 더 이상 없도록 해야한다. 언론을 원활한 국정운영과 민주발전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이성춘칼럼]권력과 언론
입력 200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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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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