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충남 삽다리의 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은 교육현장은 물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지난 4일 벌어진 예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의 자살로 인해 참교육을 기치로 내건 전교조는 출범 14년이 지난 지금 교육현장에서 '자기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

전교조는 이에 맞서 서 교장의 자살원인이 교장의 사과를 막으려는 교감과 지역교장단에 있다며 학내 여교사 차별문제의 개선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학부모와 시민단체 인사들도 성명서까지 내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참교육을 주장하는 전교조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제 목소리를 낮춰 교육현안들을 토론하는 교육공동체의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차시중'을 둘러싼 문제가 교장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도록 했는가 하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설사 전교조의 사과압력을 받아 아무리 괴로웠다손 치더라도 서 교장이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택했다는 것도 아쉽고 계속적인 대화로 문제 해결을 구하지 않고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사실을 올려 여론을 통한 해결을 하려 했던 기간제교사 진모씨의 경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진 교사의 생각이 어쩌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고 만 것이다. 그렇잖아도 검증 안된 비리들이 인터넷상에 횡행(橫行)하며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 교사는 '저 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을 두고 간 교장선생님이 원망스럽다'며 '문제에 적극 대응하려다 보니 이렇게까지 됐다. 웬만 하면 기간제 교사들이 참고 지냈으면 좋겠다'고까지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조차 전교조와 자신을 살인마처럼 만들어갔고 선생님의 죽음만 있을뿐 원인규명은 찾을 수 없다고 밝힌 진 교사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려고 무심코 던진 돌팔매(?)가 자신과 전교조를 비난하는 돌팔매(?)로 돌아오고만 '무거운 짐'이 됐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교단은 지금 백년대계의 주춧돌이 흔들릴 정도로 반목과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교장 교감 등 관리직 교원과 교사, 전교조와 교총 교사, 보수와 개혁 등으로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잖아도 아이들이 사교육시장으로 내몰리면서 우리 교육의 최대 해법은 '공교육 살리기'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공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아집, 냉소, 무관심으로 교무실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심지어 참스승임을 잊고 온갖 구호와 투쟁마저 난무하기도 한다.

몇 년째 학원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학교들이 부지기수다. 전교조 교사들과 재단측을 옹호하는 교사들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철야농성, 교사폭행, 수업거부 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큰 갈등이 노출되지 않은 학교에서도 교무실은 전교조, 교총 등 각 '교원단체'라는 경계선을 사이로 서로의 마음을 닫아버린지 오래다. 한 중학교 K(36) 교사는 “식사를 할 때도 전교조와 교총교사가 따로 모여 밥을 먹고, 의견교환을 해야 할 교재연구마저도 따로 따로 한다”면서 “학생들에게는 친구를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지도하면서도 본인은 그렇지 못한 교사들의 자화상을 보노라면 씁쓸하다”고 털어놓았다.

하기야 각종 교육정책에 있어 공공성 확보와 교육현장의 민주화를 가져온데는 전교조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초기의 순수성을 잃고 권력 집단화됐다는 학부모들의 우려를 이제 곱씹어보아야 할 때다.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현장에서의 가치와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 땅에서 교육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심정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가 대화에 나서자.

한 발짝씩 양보하자. 서 교장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교단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한다. 교단이 바로 서야 한다. 교단이 흔들리고 갈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준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