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부터가 신(神)이 있다면 신의 '인사 발령'을 받은 것이고 결혼부터가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에 의해 각각 신랑 신부로 가정 근무 인사 발령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출생부터가 강간 등에 의한 잘못된 인사 발령이 쌨고 부부 또한 그릇된 발령에 의한 엉터리 배역(配役)이 많다.

그 흔해빠진 설문 조사 통계를 보면 보통 80% 이상의 남편과 아내가 다시 태어나면 현재의 남편 또는 아내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고백이 그 엉터리 부부 배역이 '많은' 정도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아니, 어느 짓궂은 개그맨이 음식점에 모인 30여명의 중년 여성 계원을 모두 '뒤로 돌아 벽 앞으롯!' 앉힌 뒤 눈을 감게 하고는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를 손들게 했다가 그만 주먹밥 같은 쇼크를 삼키지 못해 뒤로 넘어질 뻔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놀랍게도 단 두 명의 여성만이 리턴 매치를 원했다던가 해서다.

누군가를 붙들고 쩌렁쩌렁 묻고 싶다. 도대체 안방 인생극장 부부 배역의 80%, 90% 이상을 요즘의 흔한 말로 황금 콤비와 드림부부가 아닌 언밸런스, 노 하모니로 망쳐 놓는 캐스터(caster)가 누구란 말인가. 남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상의 늙은이 '월하노인(月下老人)'인가 '월하빙인(月下氷人)'인가.

그렇다면 그 노인은 단순한 노안(老眼) 정도를 넘어 심한 난시와 착시에다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80%, 90%나 맘에도 들지 않는 노새 탄 기사(騎士)를 보내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부부 배역뿐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배역, 캐스팅(casting)이 그야말로 최악의 워스트(worst)가 아닌 베스트가 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TV 드라마만 보더라도 적재(適材)의 적역(適役)인 베스트 캐스팅이란 보기 드물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그 역할을 맡고 있고 도저히 그런 구실이 적격이 아닌 배우가 흉내만 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가.

가수 배역 또한 그렇다.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진부한 타성적 창법 아니면 발성 자체가 안돼 주어진 음계도 소화하지 못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가. 한데 이상한 건 그런 가수일수록 자주 나온다는 점이고 좀 나와줬으면 싶게 잘하는 가수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 대 배우 탈마(Talma)는 연기의 필수 조건이자 기본 조건을 예민한 감수성과 빼어난 지성이라고 했다. 그 말은 TV 배우나 가수 등 예능 연기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 연기자 배역에 그대로 해당될지도 모른다.

조선왕조 518년과 현대사(史)만 보더라도 그런 연기 능력을 갖춘 배역의 임금다운 임금과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베스트 캐스팅이 도대체 몇이나 됐던가. 대부분이 이른바 '정신적 프로필'이 형편없는 인격 장애자 아니면 지적(知的) 장애자에다 성격 파탄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선가 그 흔한 강호(江湖)의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발굴해 쓰는 베스트 캐스터가 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인재란 한 마디로 누가 누구를 알아보고 쓰느냐에 달렸다. “감(材)이 크면 쓰기 어렵고 그런 인물을 부릴 만한 인물 또한 드물다”는 게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말이다.

육당 최남선이 5천년 우리 역사 인물을 통틀어 가장 이상적인 조각(組閣)을 해 보인 적이 있다. △국무총리→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乙巴素) △외무장관→내침한 거란군을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해 퇴각시킨 서희(徐熙). 이라크 파병 '서희부대'의 그 서희다. △내무→단군조선 때 백성을 편안히 보살핀 팽오(彭吳) △법무→기자조선 때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운 왕수긍(王受兢) △재무→부여의 명신 명위고(明位古) △교육→설총 △육군참모총장→을지문덕 △해군〃→이순신 등. 그런데 지하의 육당선생을 깨워 묻고 싶은 가장 궁금한 사항은 역시 가장 이상적인 '베스트 대통령'엔 누구를 캐스팅할 것인가 하는 그 점이다.

대통령 배역은 국민이 정하고 장관 캐스팅은 대통령이 한다. 그렇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인정하기 어려운 역대 대통령 배역은 물론 갈수록 유출유괴(愈出愈怪),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곱사리 봐주기 난감한 온갖 괴짜 장관, 저질 장관 배역 또한 국민 배역이 대통령 배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해왔던 것이 아닌가.

영어에 'hammy'라는 단어가 있다. '햄 냄새가 난다'는 뜻이지만 '엉터리 배우 같다'는 속어이기도 하다. 베스트가 못되는 대통령 배역과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해미 장관' 워스트 장관 배역들이 이제는 더 이상 출현하지 않기만을 저 하늘 허공과 '우연'을 향해 바라자니 너무나 답답하다./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