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출신의 존 스타 의원은 미국의회에서 손꼽히는 국방통(通)-국방문제 전문가였다.
 
1969년 후반부터 하원의원을 거쳐 20여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줄곧 국방위원으로 활약했으며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꿈이 있었다. 그의 꿈은 대통령·부통령이 아닌, 국방장관이 되는 것이었다.
 
카터 이후, 12년간의 레이건과 부시의 공화당정권이 끝나고 1992년 민주당이 집권한 뒤 클린턴 대통령이 스타를 국방장관으로 내정하자,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청문회가 시작되자 어제까지 동료였던 공화·민주 양당의원들은 안면을 바꾼 채, 그의 경력·능력을 이잡듯이 캐고, 물고 늘어졌다.
 
청문회가 끝난 뒤, 표결결과 인준은 부결됐다. 이혼 등 복잡한 사생활도 그렇고 폭음 습관에, 취하면 주사(酒邪)가 심하다는 게 부결 사유였다. 대통령에게 핵 미사일의 발사여부를 판정·건의하는 막중한 국방장관직에 '주정이 심해'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강경보수파이자, 법학자로도 저명한 로버트 보그 판사를 대법원 판사로 내정했으나 진보파 의원들의 공세로 젊은 시절 대마초를 핀 사실이 드러나 부결되고 말았다. 부시 현 대통령에 의해 법무장관에 내정된 앤스클로프트 장관은 과거 인종차별 발언 등이 문제되어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끝에 간신히 인준됐다.
 
청문회 제도를 창안한 것은 영국이지만 확고한 민주주의의 제도로서 뿌리를 내린 것은 미국 의회였다.
 
우리나라가 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88년 6월 13대 국회로서 입법과 조사청문회만을 채택한 후 실시된 5공, 광주사태, 언론, 한보사건, 고급옷 로비청문회 등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다.

2000년에는 인사청문회도 도입, 이한동 총리가 처음 거쳤고, 장상·장대한 후보자는 부결됐다. 또 노무현 정부직전에 있은 청문회법에 따라 법에 의한 인준표결은 하지 않지만 국정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소위 4대 기관장(Big-Four)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지난 22일 실시된 국정원장에 대한 국회정보위원회는 많은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날 무소불위(無所不爲)로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개입, 인권침해 부패연루 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으로부터 적지않은 불신을 사온 국가정보원의 쇄신 과업을 맡을 고영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의원들간의 날카로운 질문경쟁으로 시종 긴장속에 계속됐다.
 
물론 고 후보자가 전제조건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북한을 반국가단체에서 제외여부 논란, 이념의 편향과 전문성 부족 등을 제기했으며 일부 의원은 과거 간첩이었던 김낙중씨의 석방운동을 했던 점을 들어 '어떻게 간첩을 잡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라고 추궁했다. 청문회는 다음날 여야만장일치로 고 후보자가 국정원장에 부적절하다는 보고서를 채택하여 또 한번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부적절결론'에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시절 행세하던 사람이 고 후보자에게 색깔을 씌웠다”고 반박하며 고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했고 한나라당은 “국회 경시” “국민의사를 외면한 것”이라면서 정부에 강공(强攻)을 예고함으로써 정국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결국면으로 치닫게 됐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에 실시된 4대 기관장 특히 국정원장 청문회의 위력, 효과와 영향력이 참으로 컸다는 점이다.
 
이와관련, 필자는 여야에 대해 하루속히 청문회법을 고쳐 장관과 장관급 내정자도 청문회를 거치게 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사실 필자는 10여년전부터 역대 야당이 장관의 청문회를 주장할 때마다 반대했었다. 도대체 장관을 길어야 1년, 보통 8~10개월마다 교체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경우 국회는 모든 의안심의를 제친 채, 연중내내 청문회로 지샐 것이라는 걱정때문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첫 조각을 하면서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2년 정도의 장관재임을 보장한다고 다짐한 만큼 올바른 인사,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사를 위해서도 장관 청문회는 반드시 거칠 필요가 있다. 물론 법으로 국회의 인준은 받지 않지만, 국민들은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 자질, 능력, 경륜, 비전 등을 검증할 수가 있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경우 국민의 신뢰속에 자신을 갖고 직무에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며, 결함과 허점이 드러날 경우 그 정도에 따라 임명권자는 초기에 인사를 바로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먼저 장관 청문회를 실시하고 1년 뒤에는 차관급과 산하 기관장들의 청문회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으로부터 도덕성과 능력, 자질 등에 대한 건강진단, 확실한 검증은 공직자는 물론 정부의 신뢰를 높이게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