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 분식회계의 여파가 금융시장을 여전히 흔들고 있다. 사외이사라도 제구실을 한다면 이런 사건이 일어날까 싶다. 분식수법이 너무 간단하다. 외상채무를 누락시키고 가공자산을 계상하는 수법이다.
대출금을 부채로 잡지 않는데 채권은행이 돈줄을 대줬다. 회계감사는 초보적인 분식회계조차 적발하지 못했다. 신용평가기관은 신용의 의미를 모르는지 이런 기업에 최우량 신용을 등급했다. 더 한심한 것은 무엇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밖에서 감시하는 눈이 어둡다면 안에서 감시하는 눈이라도 밝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감사나 이사는 지배주주가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앉히면 그만이다. 기업주의 눈 밖에 나면 끝장 나니 알고도 모른 척하는 처지다. 거액의 분식회계가 이루어져도 손발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내부의 감시를 강화해서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자고 1996년 사외이사제가 도입됐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1998년 재벌개혁 차원에서 이 제도를 강화했다. 모든 상장기업은 전체이사의 4분의 1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의무화했던 것이다.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서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를 막자는 취지였다.
SK글로벌 분식회계의 결과만 본다면 사외이사가 아무런 역할을 못하지 않나 짐작된다. 그래도 주요기업의 사외이사 면면을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인사들이다. 경제부총리, 대법관, 장·차관에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검사, 국세청 고위간부와 같은 권력기관이나 유관기관 출신들이 많다. 여기에다 대학총장을 비롯한 고명한 교수, 덕망가로 알려진 시민운동가, 필명을 날리는 언론인 등등 저마다 쟁쟁한 인사들이다.
그 동안 사외이사와 관련하여 말썽이 적지 않았다. 대학총장이 사외이사를 겸직하여 논란을 빚기도 하고 국무총리 지명자가 과도한 스톡옵션을 받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대학총장 출신 장관이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실이 밝혀져 일찍 퇴진한 일도 있다.
워크아웃을 받는 기업이 은행간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는가 하면 건설회사가 건설부 장·차관 출신을 모시기도 했다. 전자회사가 과기부 장관 출신을, 비료회사가 농림부 고위관리 출신을 선임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기가 바쁘게 DJ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진출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구성을 보면 일부기업을 제외하고는 그 취지를 살린다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지배주주의 사적 인연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선임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사회에 꼭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경영정보나 경영자료를 회의에 임박해서 전달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보이는 사외이사도 드물다고 한다. 본업이 있는 데다 사회명예직을 겸임한 인사들이 많아 출석률도 낮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수는 듬뿍 받는다. 한 달에 한두 번 나갈까 말까한데 보통 수백만원씩 받는다. 많게는 억대 연봉과 스톡옵션에다 활동비, 거마비를 주는 곳도 있단다.
사외이사를 하려면 기업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먼저 회계자료를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생산상품에 대한 지식도 필수적이다. 원가절감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고 품질관리에 관해 설명하려면 말이다. 개방체제에서는 국내에서도 세계적 기업과 경쟁해야 하니 판매시장도 이해해야 한다.
수출기업이라면 세계경기의 변동, 국제금융의 동향, 자원의 수급전망, 교역상대국의 무역제도도 항상 주시하고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영의 조언자도 감시자도 아닌 합법적인 로비스트로 보면 옳을 듯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기업주와 가끔 만나 덕담이나 나누는 사이일 것이다. 사외이사제가 얼굴과 이름을 빌려주고 공돈이나 받는 제도로 전락한 꼴이다.
사외이사제의 취지는 훌륭하다. 그런데 현실은 기업의 이권활동을 도와주거나 저명인사의 부업거리가 되고 말았다.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주주를 감시·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퇴직각료·관료는 유관업종에서 일정기간 활동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한다. 사외이사만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면 재벌기업의 상습적인 분식회계를 막을 수 있다./김영호(시사평론가)
[김영호칼럼]제구실 못하는 사외이사제 필요없다
입력 200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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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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