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16일 새벽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소장 등 일단의 군부세력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세운 민주정부를 뒤엎은 이유와 명분으로 3가지를 들었다.

그것은 먼저 장면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사회혼란, 국가혼란을 들었고 다음 북한의 침략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것을 내세웠고, 끝으로 부정부패한 구(舊)정치인들의 제거를 명분으로 삼았다. 특히 구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아예 혁명공약에서 구악(舊惡)으로 규정하고 깨끗이 일소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기세등등했던 쿠데타 세력의 한 간부는 “구정치인들은 나라를 갉아먹은 박테리아-병균들”이라고 한술 더 떠 비난한 후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박테리아를 박멸시키겠다”고 큰 소리쳤다. 이를 실천하듯 얼마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정치정화법을 제정하고 많은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상당기간 금지함으로써 손발을 묶었다.

근 1년반동안 금지됐던 정치활동이 1963년 연초부터 재개되면서 정화법에 묶이지 않은 구정치인들이 저마다 야당 재건을 서두르며 기세를 올리자 위협을 느낀 군사정부는 느닷없이 군정연장을 선언하여 국내외를 경악케 했다.

야당과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소장은 4월초 윤보선 전 대통령 및 허정 전 과도정부수반 등과 연3일간 마라톤 영수회담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씨는 군정연장 절대불가론을 역설한뒤 “석탄만으로 만든 구공탄보다 석탄 외에 진흙, 톱밥 등 잡물을 섞어서 만든 구공탄의 화력이 월등 세다”면서 정치인들에 대한 규제를 즉각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대해 박 소장은 구악론을 다시 주장하면서 깨끗한 정치와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며 일축했다. 그런데 박 소장은 그해 11월에 있은 6대 국회의원선거에 공화당의 신진들만으로는 승산이 어렵자 구자유당 구민주당 등 구정치인들을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다. 박테리아-구악-적과 동침을 한 것이다.

잡초가 다른 식물 등에 영향을 주는 나쁜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반 농작물의 수확을 감소케하고 병·곤충의 서식처 역할을 하며 농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키고 인축(人畜)에 유해할뿐더러 수로 등의 물 이용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잡초의 유익성도 만만치 않다. 장마철에 토양의 침식을 막아주고 재해(災害)에 강하고 가뭄이나 저온에도 생육하는 등 내성(耐性)식물이 자라는 것을 도우며 여러가지 영양소를 제공함으로써 흙의 영양분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어버이날 각계인사 530여만명에게 전자편지를 보내 국민들에게 제기한 '잡초정치인 벌초론(伐草論)'이 근 1주일째 정가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제거해야할 4가지 잡초정치인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리사욕과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정치인,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으려하는 정치인 등으로 잡초들을 규정한 것이다. 잡초론이 제기된 후 일부의원들 사이에는 “○잡초의원 안녕하십니까” “×잡초의원 별일 없으십니까” 등의 자조섞인 인사까지 오가고 있다.

잡초론에 대해 여야가 제각각의 해석을 했다. “신당창당에 방해가 되는 여당 의원들을 솎아내고 내년 총선에서 일부 시민단체를 동원, 낙선운동을 유도하려는 음모” “내년 총선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한 것이다” “자기와 코드가 맞지 않는 정치인들을 잡초로 매도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발언이다” 등이 그것이다.

특히 야당은 노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잡초를 제거하자고 한 것을 두고 제 2의 낙선운동을 부추기려는 게 아닌가 하며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법인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지지해 파문을 일으켰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예상외로 반발이 거세자 노 대통령은 “원론적인 이야기로서 국민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지금까지 수십번 했던 말”이라며 “저의가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정치권의 의구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저의가 없었다고는 하나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여당의 신·구파와 지연되는 신당작업 그리고 어떤 개혁작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여소야대의 벽 등은 하루도 잊을 수 없는 무거운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플라톤이 추구한 이상(理想)국가의 정치판은 인류의 영원한 꿈으로서 정치판에는 약초(藥草), 감초(甘草), 영초(靈草), 기초(奇草) 등도 있고, 잡초도 잡석도 있게 마련이며 꼭 해로운 잡초라면 그것은 선거때 국민이 판단해서 낙선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이 잡초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유익한 잡초로 뽑았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권, 선택권은 국민만이 갖고 있다./이성춘(언론인·前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