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건설이라면 우리나라보다는 영국이 저 만큼 앞서 간다. 영국도 처음에는 몇 개의 신도시들이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다.
런던에서 버밍험 방향으로 8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밀턴 케인스(Milton Keynes). 영국의 30번째 신도시인 밀턴 케인스는 주거와 산업이 함께 공존하는 '성공한 자족 신도시'로 꼽힌다.
밀턴 케인스는 런던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1967년 영국 정부가 밀턴 케인스 개발공사를 설립, 3년의 계획수립기간을 거친 뒤 70년부터 건설이 시작됐다. 우리처럼 '뚝딱'하면서 만들지는 않은 것 같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늪지대였던 밀턴 케인스는 12개의 인공호수를 갖춘 아름다운 도시, 수천개의 기업이 입주한 자족도시로 발돋움했다.
200여만평 규모에 격자형 도로망과 분산화된 도시구조, 그리고 도로변과 주택단지 사이에는 넓은 방음림이 조성돼 있어 자동차 소음을 차단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전체 면적의 12%인 318만평에 달하는 산업지역에는 4천500여개 기업이 입주해 고용을 창출하는 자족도시로서의 기능도 갖췄다.
호주에 가면 또 수도 캔버라가 있다. 1901년 호주 연방정부가 출범하면서 191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행정·정치 중심도시로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204㎞ 지점에 있다. 캔버라의 특징은 정치·행정 기능 이외의 주거·상업·업무시설 등 자족기능 시설을 위성도시로 철저히 분산, 완벽하게 건설했다는 점이다.
캔버라의 인구는 30여만명. 수십년 세월이 소요된 호주의 캔버라 뉴타운 개발. 캔버라는 그동안 수많은 계획수정이 있었지만 철저한 기능구분, 도시팽창 억제, 위성도시 육성정책에 힘입어 자연친화적인 인공도시로 성장했다.
정부가 최근 김포(480만평 규모)와 파주(275만평)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키로 했다.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늘려 서울과 수도권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강남발(發)' 집값 폭등세를 잡기 위한 대책의 하나다.
그러나 김포와 파주가 서울에서 30㎞나 떨어져 있는데다 위치도 서울 서북부에 편중돼 집값 안정에 기여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의 주거수요를 대체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정부가 기존 신도시의 난개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포, 파주는 기존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자족기능 없는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해 난개발과 교통체증만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에 따라 경기도도 교통대책 없는 신도시 건설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정부가 발표한 경기도내 두 곳의 신도시 조성은 자족기능과 광역교통시설 확보대책 등을 먼저 수립한 뒤 개발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심각한 주택부족 현상을 감안하면 새로운 택지개발과 주택의 지속적인 공급은 필요하다. 그러나 수도권 신도시 건설은 단순히 주택공급 확대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기왕의 신도시가 그렇듯 새로 들어설 신도시가 자족도시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베드타운에 머물게 되면 수도권 전체의 환경은 극도로 황폐해질 것이 뻔하다.
수도권의 과대한 집중과 비대화에 따른 환경과 교통의 악화는 말할 것도 없고 신도시 자체의 교육 복지 문화 치안 공공서비스 등 생활여건도 문제가 된다. 이같은 부작용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80년대말 주택의 안정적 공급을 이유로 졸속으로 건설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수도권 5개 신도시의 부작용과 역기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 뿐이 아니다. 경기도에는 영통지구에 이어 판교 신도시와 동백지구 흥덕지구 동탄 태안 오산 그리고 평택 천안까지도 포도송이처럼 신도시가 우후죽순격으로 매달리고 있다. 김포나 파주는 이제 베드타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렇잖아도 수도권 비대화, 과밀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 이 때 김포 파주의 신도시 건설계획은 수도권의 공간구조 개편, 인구와 산업배치 등 균형개발을 도외시하고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밀턴 케인스나 캔버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도시 입지의 적합성, 도시간 기능의 보완성 등이 철저히 검증되어야 하며 거기에 맞는 개발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준구(논설위원)
신도시의 성공조건
입력 200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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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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