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에 난 7개의 구멍은 아무렇게나 뚫린 게 아니다. 이목구비의 입지(立地) 조건에 의해 가장 적절한 자리에 뚫려 있고 각자가 가지런한 질서를 유지한다. 서로의 구실에 대해 참견하는 법도 없고 침해하는 일도 없다.

오직 각자의 위치에서 생래(生來)의 고유한 구실과 책임을 다할 뿐이다. 이런 상태가 가로되 '질서정연'이고 본형(本形)이다. 따라서 '얼굴의 무질서'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입이 이마로 올라간다든지 시각과 청각 기능이 뒤바뀐다든지 그런 뒤죽박죽 두루뭉수리 상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굴의 혼돈이란 있을 수 없는 가정(假定)에 불과하다.

고대 중국의 '혼돈(混沌)'의 신(神)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다른 신들은 이목구비 7개의 구멍이 모두 뚫린 정상적인 모습으로 창조됐는데 반해 혼돈의 신만은 그 7개의 구멍이 만들어지는 일곱째 창조의 날에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처 정리가 되지 못한 두루뭉수리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를 일본에서는 '놋페라보'라 이른다. 혼돈을 뜻하는 영어 '카오스(chaos)'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어 'Khaos'에서 온 '카오스'는 그리스 신화 또는 우주개벽설에서 일컫듯이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뒤죽박죽 무질서 상태를 가리킨다. 하늘과 땅이 열리기도 전의 상태, 해가 서쪽에서 뜰 수도 있던 상황이 즉 카오스 상태였다.

그런 카오스 극복이 천지창조 신의 몫이었고 엉망진창 두루뭉수리 얼굴을 가진 혼돈의 신 또한 천지창조 신이 책임질 일이라면 인간 사회의 무질서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인간 사회의 무질서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시적인 무질서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다. 전자가 거리와 공공장소 등의 무질서라면 후자는 사회 정의와 도덕, 규범과 기강, 진실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부패와 문란, 해이(解弛) 등의 무질서다.

국가 원수의 공식 행사길이 시위대에 막혀 뒷문으로 들어가고 5·18 영령을 추모하는 대통령의 조화가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은 극심한 사회적 무질서, 즉 아노미(anomie) 상태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또 대통령이 미국서 청와대에 건 전화가 불통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부의 존재란 낮에만 있고 밤에는 없다는 야간 무정부 상태, 즉 '야간 아나키(anarchy)'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떻게 '미국은 지금 한낮'이라는 시간 개념조차 망각한 채 고요한 밤의 안일에만 빠져들 수 있는 것인가.

19세기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프루동(Proudhon)이라든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Bakunin)이나 크로포트킨(Kropotkin)이 꿈꾸던 그런 무정부 사회가 우리 땅에도 도래했다는 것인가. 개인이 일체의 국가 권력이나 사회적인 규제로부터 해방된 채 무한대의 자유를 누린다는 그런 상태가 그들이 갈망했던 이른바 '아나키'였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되는가. 국가적인 통제와 사회적인 규제의 끈이 모조리 풀려버린 무정부 상태가 과연 온전히 굴러갈 수 있는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란 모두가 헬렐레 동공(瞳孔)이 풀려버린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 같은 꼴로 전락할 것이고 얼굴에 일곱 번째 구멍이 뚫리던 날 죽어버린 혼돈의 신처럼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이런 우스개 얘기가 있다. 의사와 건축가와 정치가 세 사람이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주제는 세 사람의 직업 중 어느 쪽이 가장 먼저였느냐 그것이었다. 먼저 의사가 자신있게 말했다. “그야 두 말 할 것도 없이 의사가 가장 먼저다.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든 것은 외과 수술 의사의 비조(鼻祖)가 아닌가.” 다음엔 건축가가 그게 그런 게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건축이 훨씬 먼저다. 태초의 카오스(혼돈)에서 이 세상의 코스모스(질서)를 뚝딱뚝딱 만들어낸 건 바로 하나님의 건축 기술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자 닳고닳은 능변의 정치가가 뒤질세라 박차고 나서면서 능글맞은 어조로 다그쳤다. “자네들 주장도 둘 다 그럴 듯해. 하지만 세상을 뚝딱뚝딱 건축하기 이전부터 카오스 상태를 미리 준비하고 만들어낸 게 누구였단 말인가. 그게 바로 우리 정치가일세.”

그러니까 무질서, 무기강의 불법 천지 아노미 상태와 도무지 국가와 정부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아나키, 즉 무정부 상태는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정치 지도자 책임이고 자초지화(自招之禍)다. 국법 질서와 사회 기강이 서지 않는 나라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