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황폐화된 미국은 새로운 이상으로 도덕과 인권을 내세운 지미 카터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러나 중앙정치에 무경험자인 카터는 처음부터 큰 착각을 했다.

도덕성 회복과 인권옹호만 외치면 국민들은 언제나 박수를 쳐 줄 것으로 오해했다. 백악관의 요직에 전문가들 대신 조지아주에서 어울리던 촌티나는 조지아마피아단을 두루 기용했다. 그러나 취임한지 100일도 안돼 경제가 요동을 치고 얼마 후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백악관은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집권 3년째인 1979년 엄청난 위기가 몰려왔다. 휘발유값 폭등과 인플레이션, 실업률 급증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카터는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1주일동안 각계 전문가들과 만나 경제난 타개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카터가 내놓은 것은 에너지장관 교체 외에 일반적 대책이어서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이런 상황속에 이란의 팔레비국왕을 축출한 호메이니 과격파 일당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 150여명의 외교관을 억류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카터는 400여일동안 발만 구르다 물러났다.

카터에게 실망한 미국 국민들은 새대통령으로 뽑은 레이건이 이란대사관의 인질들을 석방, 송환시키는데 안도하면서도 영화배우 출신의 그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취임 몇달후 그의 능력을 테스트할 계기가 왔다. 민항기 조종사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여 전국의 항공교통이 마비된 것이다.

레이건은 이들의 파업이 적법하지 않았음을 알고 해제를 명령했으나 듣지 않자 3군의 조종사들을 동원, 대체하면서 직장에 복귀하지 않은 조종사들을 무조건 파면조치케 했고 조종사들은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합리적 국정운영, 작은 정부, 감세(減稅), 국민의 자유확대, 반공반소(反共反蘇)를 국가경영의 신조로 내세운 레이건은 모든 권한을 각부 장관 등에게 일임하되 위기가 닥칠 때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결단을 내림으로써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런 업적으로 미국 국민들은 그를 'F 루스벨트 이래 최고의 지도자'로 평가, 애쉬모어 돌산에 얼굴을 추가로 조각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취임한 지 100여일도 안된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부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이러다가 대통령직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말해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어느면에서 섭섭함이 밴 이같은 말은 그의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자신은 대선 이전부터 서민과 근로자 편이고 취임 후에도 이런 뜻을 기회있을 때마다 밝혔음에도 방미 전 화물연대가 파업하고 합법화와 수배자 해제를 검토중인 한총련이 미국에 굴복했다며 5·18기념식 참석을 한때 저지하고 화환을 부수는가 하면 전교조는 교육행정전산망(NEIS)의 계속 운영에 반발, 연가 휴가투쟁을 들먹이고 공무원 노조가 불법적으로 파업 찬반투표 등을 벌이는데 대해 지극히 섭섭하고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데는 노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대통령이 노조대표, 평검사, 일선 공무원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니 총리와 장관들은 할 일이 없지 않은가. 또 대통령이 이것저것 모든 부문에 대해 얘기하니 기관장과 공무원들은 창의력은 접어둔 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노 대통령이 흔들리는 참여정부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 처방은 분명하다. 앞에서 열거한 문제점을 시정하는 게 급선무다. 우선,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국정운영의 큰 물꼬를 잡는데만 전념해야 한다.

책임 총리제의 공약대로 총리와 장관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잘못되는 방향만 가려주는데 그쳐야 한다. 청와대의 비서진을 경험있는 관리와 전문가로 대폭 교체하고 조직을 보다 합리적이고 단출하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맞지 않는 인사들도 기용하거나 제언을 듣는 게 중요하며 위기 관리 시스템을 확립, 연중 24시간 내내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당정분리라 하지만 끊임없는 신·구주류의 갈등, 신당 논쟁에 대해 노 대통령은 확실한 방향을 밝혀야 한다. 지금같은 양상이라면 설사 신당을 추진해도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전망도 보장도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은 노 대통령의 새로운 모습, 묵직한 입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 경영의 최고책임자로서 소신있고 단호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취임 100일이 되는 내달 3일 국정운영의 새로운 리더십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직을 더이상 못해먹겠다는 얘기는 두번 다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성춘(언론인·前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