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속놀이판에 가보거나 외국의 서커스를 시청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종목이 줄타기이다. 허공에 걸린 외줄 위에서 광대나 곡예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기예는 지켜보는 사람의 간을 졸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곡예사들이 허공의 외줄을 그냥 걷던가. 하나 같이 몸의 균형을 잡아줄 도구를 사용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광대들은 주로 한 손에 부채를 활짝 펴들고 균형을 잡고, 외국 곡예사들은 기다란 균형대에 의지해 빌딩 사이사이를 오간다.
한국 사회는 지금 외줄을 타고 있다. 그것도 균형을 유지해 줄 부채도 균형대도 없는 위험한 줄타기이다. 너도 나도 서로의 주장을 허공에 줄로 매어놓고 위험한 줄타기를 자청하고 있으니 웬 소란인지 모를 일이다. 여기저기서 위험을 알리는 고성이 터지고 지켜보는 국민들은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
조흥은행 파업 타결의 전말을 지켜보면 외줄타기의 구조적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신한금융지주와의 합병을 반대한 조흥은행 노조는 예금인출 사태와 은행전산망 마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파업이라는 외줄에 올라탔다. 요구안 관철아니면 공멸의 추락이라는 양자택일의 줄타기를 벌인 것이다.
결국 3년간 독자경영, 임금인상, 통합이후 고용보장을 관철해냈지만, 합병대상 기업에게 독자경영은 물론 임금인상까지 약속하는 비상식이 관철되자 국내 경영인이나 외국인 투자가 모두 '난센스'를 합창하고 있다. 이 뿐인가. 인천을 비롯한 대도시 지하철 노조, 민주노총, 버스·택시 노조 등 외줄을 타거나 걸어놓은 노조가 줄줄이 대기중이다.
그러나 외줄은 노조만 타란 법은 없는가 보다. 노조의 외줄타기에 분기탱천한 경제 5단체가 23일 “정부가 법대로 안하면 기업이 법대로 하겠다”며 외줄을 매달고 나섰다. 노조의 불법에 민·형사 책임을 묻는 등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기업들은 회사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노조에 대해 법보다는 대화를 앞세웠는지, 노무현 정부의 친노(親勞) 경향이 지나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영자들의 인식은 '그렇다'는 것이고, 그래서 법대로 하다가 안되면 공장문을 닫거나 외국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니 경영자들도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줄을 타겠다는 기세다.
경제분야 뿐아니라 외줄 타는 집단은 도처에 널려있다. 대북송금 특검 이후 서로를 압박하는 외줄타기를 계속 중이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 불발 이후로는 긴장이 더욱 완연해지는 형국이다. 정치권의 외줄은 또 서로 갈래를 치는 바람에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여당인 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둘러싸고 외줄 위에 선 신·구주류의 칼싸움이 자못 살벌하다. 한나라당은 대표 경선의 모양새가 험악하더니 전당대회 이후의 진로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금배지들이 모두 정쟁의 외줄을 타는 동안 국민들의 고통지수는 한없이 치솟고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놓고 벌어진 교단과 교육단체, 교육부의 분열과 갈등 역시 장기간 외줄 위에서 체류 중이다. 환경단체와 전북도민은 새만금 외줄타기를 멈출 태세가 아니다. 정부 내에서는 지방균형발전론을 둘러싼 부처간의 교묘한 외줄타기로 인해 수도권과 지방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외줄에 올라탄 우리의 상황은 심각하다. 모든 이익단체와 정치집단이 각자의 주의와 주장을 외줄로 삼아 줄타는 사회는 언제든 추락의 참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엄혹한 한반도 주변환경을 생각하면 위기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 우리가 단선궤도 위에서 통행 속도와 선후를 따지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경기침체는 심화되고 한반도 정세는 복잡해지고 있다. 이제는 모두 밟고 선 외줄에서 내려와 질서를 회복하고 일의 선후와 속도를 다시 가려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누구나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원칙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원칙을 모든 행정분야에 침투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가 개입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사회는 자율적인 조정과 통합 능력을 상실한 사회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윤인수(논설위원)
외줄 타는 사회의 위기
입력 2003-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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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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