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걸려들었다. 터무니 없는 한 협잡꾼의 거대 사기 프로젝트에 추악한 한국 정치가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포충망에 걸려든 나방의 신세가 된 정치권의 날갯짓 소음이 오히려 상쾌하다. 윤창렬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은 3천명 서민의 희망을 긁어모아 정치권·금융계·관가를 로비자금으로 도배질 했다.
사기당한 피해자들의 심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한 지경이겠으나, 굿모닝 게이트는 추악한 한국정치를 매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미국이 참혹한 테러 현장인 세계무역센터를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폭심지)'로 명명하고 파괴된 1등국가의 자존심을 영원히 기억하듯이, 우리도 굿모닝 시티를 추악한 한국정치의 그라운드 제로로 만들고 그 위에 비리정치의 묘비를 세워야 한다.
굿모닝 시티를 추악한 한국정치의 그라운드 제로로 만들기 위해서는 굿모닝 연루자들이 철저히 망해야 한다. 그동안의 부정·비리 정치를 미봉해온 세월의 누적이 오늘의 굿모닝 게이트이다. 새출발을 위해서는 진공 상태로의 완전한 파괴가 필요하다.
권력을 쥔 사람은 양심과 용기로,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철저한 속죄양의 신분으로 구태 정치의 완전한 파괴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려면 순서에 입각한 파괴공학이 필요하다. 폭약을 대충 대충 설치해서는 거대한 구태의 다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용기를 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우선 검찰에 전폭적인 신뢰를 표시하고 남김 없는 수사를 독려해야 한다. 이미 집권여당 대표가 알선수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출국도 금지됐다. 검찰이 집권여당의 대표에게 칼날을 겨눈 기억이 없다. 그만큼 검찰의 수사의지는 강하다. 정치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굿모닝 돈을 먹은, 서민을 사기친 사기꾼의 돈을 정치자금이라며 수수한 모든 정치인들을 양지에 드러내야 한다. 대통령의 통치력은 먼저 검찰을 후원하는데 발휘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대선자금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21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대선자금 여야 동시 공개와 철저한 검증을 제안했다. 먼저 공개하라는 여론에 대해서는 '공개하는 쪽만 일방적인 매도를 당할 우려가 있다'며 발을 뺏다. 그러나 이는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다. 정치적 난관에 봉착할 때 마다 일도양단의 결단으로 정면 돌파해온 자신의 정치궤적과는 어긋나는 언행이다. 100억대 이상의 돈이 여야 정치권을 오염시켰다는 의혹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감안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야당이 안한다면 노 대통령도 안할 것인가. 답은 의외로 민주당이 내놓았다. 오늘 지난해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발족 이후의 대선자금 집행 내역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 지금은 주체적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때다. 국민이 그것을 원한다.
김근태 의원의 고백은 웃음거리가 된 적이 없다. 그리고 정치개혁을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이 김 의원의 고백을 웃음거리로 폄훼해선 안된다. 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민주당의 대선자금에 자신의 경선자금 까지 얹어 여당의 대선 시즌 자금 전모를 공개하는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바로 그 시점부터 한국의 고질적인 구태정치를 매장하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다른 사람 보다 적게 쓰고도 (쓸데없이 고백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무엇이 어리석은 일인지 빨리 판단해야 할 때다. 국민앞에서 벌이는 진실게임에서 야당이 발을 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만 결단을 내리면 모든 구태가 다 털리게 되어 있는 상황이다. 야당의 결정에 따라 하고 말고 할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모든 것을 털어버린 이후에 새로운 정치를 위한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자기희생이 두려워 엉거주춤 할 일이 아니다. 양심있는 자의 용기있는 선행(先行)이 비양심 세력을 구축(驅逐)하는 원동력임을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역정으로 증명해왔다. 이번에도 정면 돌파의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 과거의 어두운 정치를 굿모닝 시티에 묻은 '그라운드 제로'에 서서 모든 국민이 굿모닝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윤인수(논설위원)
추악한정치 '굿모닝 시티'에 묻자
입력 2003-07-23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07-23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