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병리학자들이 일컫는 '반륜(半輪)사회'라는 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고 몰골 사나운 모습은 반쪽으로 쪼개진 바퀴(half wheel)라는 것이다. 이를 사회상에 비유하면 마치 기능과 규범이 반륜밖에 남아 있지 않아 도저히 굴러갈 수 없는 반규(半規)사회를 가리킨다.

난국, 혼란, 무질서, 비리, 부패 따위 어휘에 하나같이 '총체적'이라는 수식어가 달라붙는 요즘의 우리 사회야말로 반륜사회, '반쪽 바퀴 사회'가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나라 일을 경륜(經綸)할 만한 경국지사(經國之士)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흔한 말로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국제세(經國濟世)'가 될 리 없다. 행정과 입법은 죽만 쑤고 사법 또한 특별검사가 아닌 보통검사는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 도대체 나라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방향타를 놓쳐버린 항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광복 직후나 미군이 철수한 1949년, 6·25 전 해와 같고 4·19 직후와 같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런 판국에 '제 4부(府)'라는 언론마저, 이 사회의 부패 방지 소금이자 마지막 보루인 언론마저 펜 감각, 손가락 감각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언론마저 뇌물이나 외압에 오염, '바람 풍'을 '바담 풍' 한다거나 사슴을 가리켜 말(指鹿爲馬)이라 해 가며 “맞습니다. 맞고요”나 연발한다면 어찌 되는가.

87년 7월 초 모스크바 공항에 입국하려던 어느 외국인이 세관에 걸렸다. 그가 들고 있던 일본의 경제 잡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관 직원이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이게 뭐요?” 어안이 벙벙해진 외국인에게 그는 더욱 험악한 얼굴과 거센 톤으로 물었다. “이 얼굴이 어찌 된 것이냔 말요?” 문제의 잡지 표지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내외의 웃는 얼굴이 크게 실려 있었다. 당황해하는 외국인에게 세관원은 고르비의 이마를 가리켰다.

바로 그의 이마, 붉은 페인트를 엎지른 듯한 어루러기가 문제였던 것이다. 소련의 신문 잡지에 실린 그의 이마에선 붉은 어루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외국인이 안 것은 입국 후 모스크바 서점을 돌아본 후였다.

언론이 왜 그런 저질 행태를 하릴없이 꾸며야만 하는가. 그건 곡필아세(曲筆阿世)도 아닌 '곡화아세(曲畵阿世)'가 아닌가. 그런데 다행인 것은 바로 그 무렵 고르비는 “언론이 지금까지 금기로 여겨온 것을 모두 깨뜨리는 데 찬성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의 거물다운 속내를 삐죽이 보여준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진부할 만큼 유명한 얘기 하나만 더 들어보자. 1814년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엘바 섬에 유배됐지만 다음 해 2월 섬을 탈출, 남프랑스에 상륙함으로써 전 유럽을 놀라게 했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환영 인파로 덮였고 덕분에 무사히 파리에 귀환, 황제 자리에 복귀했다. 그 무렵 시시각각 바뀐 파리 신문들의 제목은 이랬다. '악마, 유배지를 탈출→코르시카 출신의 늑대, 칸에 상륙→맹호, 가프(Gap)에 나타나다→왕위 찬탈자, 리용에 진입→보나파르트, 북방으로 진격 중→나폴레옹, 내일 파리로→황제, 퐁텐블로에→황제폐하, 어젯밤 황궁에 도착…' 악마나 늑대와 황제폐하는 종잇장 하나 차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치욕적인 프랑스 언론의 단면이었다.

베토벤이 존경받는 이유는 캄캄한 귀로도 상상의 소리를 잡아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들을 남긴 점도 점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대단한 이유는 또 있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나폴레옹의 영웅상을 기리며 그에게 바치기 위해 작곡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그가 황제의 자리에 앉자 실망해 찢어발겼다는 바로 그 점이다. 그 필생의 대작이 나중에 '한 위대한 인간의 추억'이라는 주석이 붙은 채 '에로이카(영웅)'라는 곡명으로 나온 제3 교향곡이 아닌가.

언론이 죽은 사회는 사체(死體)와 같다. 한데 세계 언론자유 순위 39위 급이라는 이 땅에서 그나마 잘도 버텨주는 대표적인 언론을 말살하려는 쪽은 무엇이며 신문과 TV의 싸움을 붙여 치고 받도록 조종하는 와이어풀러는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공영방송 KBS로 하여금 저토록 무자비하게 조·중·동 때리기에 황금시간대를 40분씩이나 할애토록 방관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신문도 간혹 부실할 수 있고 잘못 할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한 바른 충고 또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토요일 밤마다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 흐르는 핏방울은 너무나 진하다. 신문을 어떻게 조폭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인가. 이제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신문소송을 취하하라”는 조순형 의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게 낫다./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