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 정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통령 취임 6개월은 의미있는 전환의 시점이었다. 취임 초기의 다종다양한 혼란과 오류를 정리하고 이제 제대로 일을 해보겠다는 대통령의 각오가 국민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국민은 이에 호응했다. 국정운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대통령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향해 통합되는 계기가 취임 6개월을 전후해 마련됐던 것이다.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겠다는 새 대통령의 인기 또한 이맘때 최고조에 달했었다. 문민정부의 김영삼 전대통령은 기득권층의 심장을 겨냥한 공직자 재산공개, 하나회 척결등 각종 개혁조치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국민의정부 김대중 전대통령 또한 단군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해낸 지도력을 바탕으로 향후 국정운영 계획을 자신만만하게 밝혔던게 취임 6개월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관례라 할 출입기자 간담회도 없이 취임 6개월의 의미를 지나쳐 버렸다. 이는 잘못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총체적 혼란 그 자체다. 이념의 혼란속에 성조기와 인공기가 번갈아 불타고 있는 가운데 노·사는 분별없는 반목으로 경제를 흔들고 있다.
집권여당이 벌이는 당권투쟁의 화염 속에 민생이 불타고 있다. 대통령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던 '용돈 연금'이 현실화 되기 직전인데 대통령과 정부는 언론과의 신경전에 힘을 허비하는 형국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신용불량자와 개인파산자가 넘쳐나고 있다. 병영문화 개혁에서 부터 새만금 개발, 핵폐기장 선정, 국토균형발전 방향에 이르기 까지 범람하는 이슈로 국민이 서로 등을 지는 위험한 세상이 됐다. 남녀노소와 빈부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자살자가 속출하고 희망 대신 반목과 대립이 극성을 부리는 난세이다.
국민들은 지금 간절하게 대통령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혼란을 정리하고 확고한 국정수행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공무원들과 온라인 대화나 할 한가한 때가 아니다. 미국식 대통령제 보다 더 급한 것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대한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큰 문제다. 국민이 불과 6개월전의 선택을 회의(懷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통합의 기운이 가장 높아야 할 시점에 국민 스스로 자기 부정에 빠진 형국인 셈이다. 그렇다고 나서봐야 욕을 먹을까 두려워 피할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국민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그러면 대통령의 통치 리더십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연히 자신을 지지한 국민의 힘이 통치기반이다. 또 통치기반은 정당으로 구현된다. 사이버 공간이나 팬클럽 형태의 사조직은 정치인 노무현의 지지기반이지 대통령 노무현의 통치기반일 수 없다. 따라서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구주류가 분할돼 끊임없는 정쟁을 벌이고 있는 집권여당의 현실을, 당정분리 원칙을 앞세워 외면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당직은 없지만 노 대통령은 분명히 '특별한 당원'이다.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최소한 자신의 정부를 뒷받침하는 여당의 정체성 정립에는 관여해야 한다. 민주당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정당으로 변화시킬 건지, 아니면 코드에 맞게 새로운 정당을 세울것인지 빨리 결정해 통치기반을 정리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청와대 참모와 각료의 힘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정당에 기반을 둔 의회민주주의의 상식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일관된 소통구조를 가져야 여야간의 정상적인 협력과 견제의 틀이 마련될 수 있고 국가 이슈를 보는 국민의 견해도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내년 총선까지 사실상 여당 부재의 과도적 정치 상황을 유지한다면 참여정부의 개혁은 혼란 속에 지리멸렬해 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과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불행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금 국민 앞에 나서기를 최대한 자제하는 듯 하다. 노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개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대반전의 계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묻고 싶다. 만일 그렇다면 불행히도 대역전의 승부를 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어쩌려는가. 노 대통령은 이제 부터라도 통치기반의 안팎을 정리정돈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을 상대하는 정상적인 통치행위를 펼쳐야 한다. 그러면서 개혁 관철의 기회를 만들거나 또는 기다려야 한다./윤인수(논설위원)
통치기반 정리정돈이 급하다
입력 200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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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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