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카피가 젊은이들의 호감을 사면서 유행어처럼 회자됐었다. 이유는 일에 지친 젊은 영혼을 여유롭고 넉넉한 휴가로 달래고 다시돌아와 '삶의 질'을 한단계 더 높이라는 희망의 권고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광고카피와 달리 희망의 권고가 무색하리 만큼 찌들고 힘들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쉬기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눌린 삶의 무게를 버티다 못해 이 나라를 아주 떠나려는 현상도 사회 곳곳에 일고있다. 자살의 증가, 출산의 감소, 이민 희망자의 증가 등 사회로부터의 이탈징후가 바로 그것이다. 젊은이들이 광고카피에 호감을 산 이유도 이러한 속내가 작용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장경제론자인 허시만(O.A Hirshman)은 시장이나 조직에서 불만이 있을 때 고객이나 조직원들은 묵묵히 참고 견디는 충성(loyalty)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저항(voice)과 이탈(exit)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저항은 불만 해결의 가능성이 높거나 조직의 애착이 클때 선택하는 것이고 반대로 애착이 적고 불만의 해결 가능성이 낮다면 이탈을 선택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허시만의 지적에 비추어 볼때 저항은 어느 정도의 희망을 담고 있으나 이탈은 희망마저 접은 상태를 나타낸다고 말할수 있다.
이탈 징후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이러한 상태가 아닐는지. 그래서 젊은이 일수록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이탈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적 평가가 될 수는 없지만 한국인이 느끼는 나이별 행복지수(Formula for happiness)만 보더라도 그렇다. 영국의 심리학자 캐럴 로스웰과 전문 상담가 피트 코언이 개발한 이지수계산법은 1천여 명의 조사자에게 80가지의 문항을 주고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들을 골라라’고 주문한뒤 집계한 수치다.
한국인은 10대의 행복지수가 71.43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60대가 69.20 그리고 50대가 66.26, 40대 65.23, 30대 63.32, 20대 61.94 순이었다. 수치에서 보듯 30대와 20대는 각기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20대는 10대에 비해 거의 10점이나 행복지수가 낮았다. 10대에 가졌던 꿈들이 희망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깨지면서 야망은 물론, 자존심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30대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자괴감을 주는 것은 행복지수뿐만이 아니다. 늘기 시작한 청년실업률은 1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다. 이는 전체 실업률 3.3%의 4배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20대 경제활동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이고, 1.2명이 신용불량이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 대학생 4명 가운데 1명이 휴학, 중퇴 또는 제적생이다. 20대 절반 이상이 ‘가능하면 이민가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바 크다.
사회를 포기한 채 등지고 벗어나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지만 이를 변화시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미미하기 짝이없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도 알수없다.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답답한 존재쯤으로 낙인찍힌지 오래다.
정치는 또 어떤가. 피폐된 경제현안은 뒤로한채 새로운 여당을 만든다 안만든다, 야당은 유능한 인재를 수혈한다, 거물급 인사를 영입한다 아니다, 신당을 만든다는 등 일반 국민들은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정치놀음을 계속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의 젊은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정준성(논설위원)
젊은이가 떠나고 싶은 나라
입력 2003-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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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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