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추석이란 신라 3대 유리왕때부터 도읍안의 부녀자를 두패로 갈라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날까지 베짜기 내기를 한 뒤 진편에서 음식과 다과를 준비하고 가무를 즐기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때 부르던 노래가 회소곡인데 그 내용중 한 구절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이다.

봄부터 잘 가꾼 백곡이 무르익고 1년중 가장 밝은 만월과 부녀자들 사이에서 이어지는 놀이 등으로 우리 조상의 넉넉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토록 즐거워야 할 올 추석명절이 장장 5일간의 황금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부분인 서민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계부담을 고통스러워 하는 한편 긴 한숨소리가 도처에서 끊이질 않는다.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전국의 임금체불액은 1천715억8천400만원으로 2천720개 사업장에서 4만5천870명의 노동자가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677억1천만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액수다.

지난 5월 체불임금은 바로 전달인 4월에 비해 550여억원이나 폭증했다. 정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체불임금은 계속 증가할 것 같다”며 “고의적이기 보다는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어쩔 수 없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체불은 고사하고 잦은 비로 인해 작업 일수가 형편없다는 것이 이유중 하나다.

최근 우리 사회는 온통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정계의 보혁, 노·사·정의 갈등, 세대간 이념대립 등으로 한치의 양보나 타협이 존재치 않고 극한적 대치속에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엎치락 뒤치락' 이전투구 양상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대 명절을 맞았으나 결코 가볍게 즐길 추석이 안됨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양로원을 비롯한 불우 시설원의 외로운 이들을 찾는 발길이 갈수록 뜸해져 요즘은 아예 없는듯 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함께 나눌 가족이 없기에 명절이 더욱 쓸쓸한 이들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조그만 관심마저 끊어졌다는 것이다. 나누어서 풍성한 한가위를 맞을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뜻일까.

서민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반면 '양주 한병에 1천200만원, 포도주는 1천만원'이라는 백화점 추석 맞이 선물세트가 기승이다. 맥칼란 1946(스카치 위스키) 500만원, 굴비세트 150만원, 건강선물세트 127만원, 송이 195만원, 천삼 184만원, 산삼배양근 120만원. 아파트값 폭등으로 구매력이 크게 늘어난 상류층을 상대하는 이른바 '귀족마케팅'은 도리어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다. 자개함에 담은 한과세트가 300만원이고 나전칠기에 담은 표고버섯 선물세트가 110만원이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먹는 것이라면 과연 누가 먹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강원도 원주시는 추석 당직근무 희망자를 공모한 결과 놀랍게도 신청자가 폭주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기피가 당연한 현상이다. 물론 시작은 고육책이었고 인센티브까지 내걸었으나 예상과 달리 오히려 희망자가 쏟아지자 당황한 직원들 사이에서 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분석과 함께 의견이 분분했다는데.

그러나 분명한 일은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지 명절 연휴가 도리어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숨길수 없는 반증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신의 소득에 맞게 소비하는 것을 뭐라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라면 그에 걸맞게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도 같이 보여야 한다. 정서에 맞는 정당한 소비인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시작되어 각 가정에서 보내고 있는 추석연휴는 각자나 가족들끼리만 즐기는 행사가 아니라, 더 큰 가족, 친척, 친지,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추석은 원래 농경문화에서 유래한 공동체의 축제로 모두가 한 마음이 될때 진정한 즐거움의 배가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