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모든 일을 귀밝게 듣고, 눈밝게 본다. 백성의 바람으로 한다. 백성의 소리는 하늘의 소리이고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하늘에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중국 오서중의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조선왕조 정치철학인 성리학의 민본사상(民本思想)에서도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했다. '백성은 귀하고, 사직(社稷·나라, 토지, 곡식)은 다음이며, 국왕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경중의 순서가 말해지고 있다.
요즘 이같은 민심이 흉흉하다. '지역주민을 만나기가 겁날 정도였다. 농사는 흉작에 정치권은 싸움박질만 해 욕할 기운조차 없다. 주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은 것 같더라'. 추석연휴기간중 지역구를 다녀온 국회의원들의 귀향보고서가 이구동성이다.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고 안되고는 나랏님과 신료들이 선정을 베풀었는지, 아닌지에 달렸다고 했어. 지들끼리 찧고 까불고 제 욕심 챙기기에 급급했지, 어디 민심을 읽기나 했겠어?' 시골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흉년이 든 것도 모두 위정자 탓이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추석연휴 막바지에는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 100여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황금들녘은 폐허로 변해 버렸다.
민심을 챙겨왔다는 정치권은 또 어떤가. 국민들은 정치에 이미 등을 돌린지 오래지만 이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은 정말 볼썽사납다. 각종 부패·비리 사건이 터졌다 하면 국회의원, 권력실세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다반사요, 정치권의 혼란과 폭력사태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던 약속은 어디 가고 민심을 대표하겠다고 자처한 국회의원들이 이 수준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서글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질질 끌면 시청자나 관객들이 짜증을 낸다. 결과가 뻔한데도, 재미라고는 한 군데도 없고 폭언과 폭력으로 얼룩진 난장판을 방영하면서 6개월이나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시청하는 사람조차 없는 민주당의 이 '신당 드라마'는 지난 87년 대선때도 이혼했고, 3당 합당으로 다시 동거를 하다가 또 헤어진 과거를 갖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부싸움 이외에 한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근데 또다시 '이혼 선진국(?)'답게 정당의 이혼을 서두르고 있다. 민심을 저버리고서. 야당인 한나라당도 역시 5, 6공 세력의 용퇴를 주장하는 세대교체론과 경륜을 주장하는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심스럽다.
부안에서는 군수가 폭행을 당해 들것에 실려가고 7만여명의 군민과 경찰력이 대치하고 있는가 하면 WTO 회의가 열리는 멕시코 칸툰에서는 딸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자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따른 농민들의 집단행동도 곧 시작될 모양이다.
추석연휴에는 체불임금을 주지 못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목을 매달고 신용카드 빚에 쪼들린 가장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또 승용차에 가족들을 싣고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시 미국대통령은 이라크 전투병 파견을 요청해와 우리를 고민케 하고 있다. 민생에 지친 국민들은 한숨으로 날을 지새지만 정치개혁을 한답시고 표를 달란다. 정말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제는 하는 수가 없다. 유권자들이 나서야 할 때다. 민주정치에서는 민심을 거스르는 위정자들에 대해서는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치러지는 17대 총선에서는 당리당략에만 춤을 추는 정치꾼들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 건지에 대해 걱정하는 정치인을 찾아내야 한다. 민심이 천심(天心)임을 반드시 보여주자./이준구(논설위원)
민심은 천심이다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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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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