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두 일본인의 책이 눈길을 끈다. 미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 히타카요시키(日高義樹)의 '미국은 북한을 핵공격한다'와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가쓰히로(黑田勝弘)의 '서울이 평양이 된다'는 것이다.

구로다는 “한국의 좌익과 진보파가 북한 김정일 체제를 사상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비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이야말로 서울이 평양이 되는 것”이라고 했고 히타카는 북한이 미국의 이라크 다음 목표가 될 것으로 전망,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회유(懷柔)할 뜻이 전혀 없는 데다 북한은 북한대로 강경하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 공격은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북폭(北爆)에다 “서울이 평양이 된다'? 그런데 우선 궁금한 건 구로다의 지적처럼 우리는 북한 체제를 비판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다 '설마'하고 태연하기만 한데 왜 일본인들은 그토록 북핵에 민감한가 하는 점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태평양전쟁 말기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핵폭탄의 위력과 그 피해와 후유증이 대를 이어 얼마나 끔찍하고 심각한가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걸 겪지 않은 우리는 그 혹독한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히로시마시가 지난 6월16일 북핵 메이커 김정일에게 초청장을 보낸 까닭은 바로 그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다. “오는 8월6일 '원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피폭지의 참상과 흔적이 어떠한가를 살펴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는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그깐 ×들 원폭의 날 기념식에 내가 왜…'였을까, 아니면 '굳이 거기까지 가 보지 않더라도 히타카의 예견처럼 미제가 폭격을 해 오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게 핵전쟁이거늘…' 그런 쪽이었을까. 하긴 2000년 6월 DJ에게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서도 3년째 오지 않은 그가 아무 데나 '함부로' 갈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는 DJ와의 약속을 지켰어야 했고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그 틈서리로 서울에 왔어야 했다.

그런데도 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름대로 계산상의 숫자는 포함됐는지 모르지만 그의 눈엔 순진하기 그지없는 노인의 햇볕정책을 지그시 무시했던 것일까, 다른 뭉툭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 또한 히로시마 초청에 가지 않은 이유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이제 곧 서울이 평양이 될 텐데 편안히 앉아서 맞을 것을 왜 굳이 서울에…'.

공산·사회주의 체제는 지구인이 앞다투듯 '역사의 다이옥신 공장'에 폐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구상에 유일한 철통같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분위기가 굳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질 '낙하 준비'가 돼간다는 조짐이다.

사회주의의 무형 무기인 프로파간다, 선전 선동술에 혹(惑)해 90도로 기울었기 때문이고 '북남통일' '우리는 하나' '민족 공조' 주술(呪術) 구호에 넋을 붙들렸기 때문이다. 그 주술 구호 속의 묵음(默音)은 단연 '통일 대통령 김정일'이다. 그건 또 '햇볕정책'이라는 근육이완 주사를 맞은 채 뉴캐슬병에 걸린 닭들처럼 꾸벅꾸벅 졸게 만드는 강력한 최면 신호음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통일이든 통일만 돼라는 희망처럼 무서운 절망은 없다. 핵전쟁을 해서라도 체제를 사수하겠다는 저들에게 흡수통일이 돼도 좋다는 것인가.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궁금증이 있다. 한반도 핵전쟁이 더 무서운가, 서울이 평양이 되는 게 더 무서운가.

다수의 젊은 층은 전자 쪽일지 모른다. 그러나 광복 직후와 6·25 공산주의를 경험한 세대라면 어떨까. 차라리 핵전쟁으로 죽음을 당하면 당했지 북쪽 체제에 흡수돼 '서울이 평양'이 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