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해 당분간 무소속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한 민주당의 악에 받친 비난과 한나라당의 정략적 비판은 일단 접어둔다 해도 청와대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정서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국민은 무소속 대통령이 과연 우리 앞에 놓인 험난한 시련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대화 빈곤과 협력 부재의 한국적 정치관행과 무소속 대통령이 빚어낼 혼란이 두렵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무소속 행보에 대해 여야 의원들과 사안별로 대화하고 크로스보팅(자유투표)도 도입하는 미국식 대통령제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정당정치의 기본을 망각한 언사이자 우리를 위협하는 안팎의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 한가한 소리다.
여러 국정현안마다 의원들을 설득해 국회의 협력을 받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자신이 대표하는 정당을 가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국회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정당이 지배하는 국민 대의기관이다. 정당이 지배한다는 이유는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자유로운 것 같지만 정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강과 정책의 틀 속에서 자율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국익 선택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구속받지 않는 한 소속 정당의 정강 정책 실현을 위해 봉사할 의무를 다해야 하고 대통령은 소속 정당이 앞세운 정강 정책을 상징하고 실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당의 발판을 딛고 있어야만 여러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의 찬반의사가 소통될 수 있고 그 과정을 거쳐야만 국익실현을 위한 여야 정당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라크 파병 문제는 국회내 보수세력의 지원을 받고, 정치개혁은 신당과 공조하며, 예산안 처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협조를 받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대통령의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과 지지세력의 기반을 스스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발상이다.
또한 국회를 한낱 대통령에 대한 협조기관으로 전락시키자는 반의회적 발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만일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추가파병을 대통령이 결정할 경우 대통령의 정당이라는 통합신당이 반대하는데, 어느 당이 발벗고 동의를 해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국익을 기준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시점에 정치혼란과 국론분열만 심각해 질 것이고 대통령과 모든 정당이 책임을 전가하는 공방에 휩싸일 것이다. 이런 혼란이 국정 전분야로 확대되면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혹시라도 그럴리는 없겠지만 청와대와 통합신당이 앞으로 예상되는 국정혼란을 통해 대통령과 신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역설적 여론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정말 큰 일이다.
신용대란, 청년실업, 경기침체, 연이은 재해 등 이미 뜨거운 맛을 볼대로 본 국민이다. 향후의 혼란은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국민이 노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개혁에 대한 선명한 의지와 진솔한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다. 통합신당 인사들이 국민이 지지한 것은 노 대통령이지 민주당이 아니었다며 탈당을 결행한 배경이다. 또 노 대통령이 당적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민주당 잔류인사들을 반개혁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었던 근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욱 정직해져야 한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추진하고 말도 안되는 '정신적 여당'이라는 용어를 쓰는 자체가 노 대통령과 신당의 개혁 이미지를 퇴색시키는 요즘이다. 현재는 소수라도 미래의 다수를 확신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돌파 해야 한다. 그래야 국정의 방향을 세울 수 있고 야당과 대화와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 통합신당은 정신적이 아니라 실체적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발판이 돼야 한다./윤인수(논설위원)
무소속 대통령은 힘들다
입력 2003-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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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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