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와 김포시 대곶면 송마리 사이에 있는 물목인 '손돌'은 폭이 좁고 물이 감돌아 물살이 세고 빠르기로 유명하다. 이런만큼 이곳에서 부는 바람 또한 매섭기가 그지없다.

겨울날씨와 관련 국어사전에 조차 ‘손돌이바람’은 물살이 센 ‘손돌’에서 부는 매서운 바람이고, ‘손돌이추위’는 센 바람으로 인해 ‘손돌’에서 발생하는 심한 추위라는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겨울날씨의 대명사인 셈이다. 비슷한 말로는 '칼바람'이있다. 매서운 바람의 북한말로 우리나라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날씨와 상황의 살벌함을 나타낼때 자주 사용한다.

요즘 무너지는 경제의 후유증이 매서운 칼바람이 되어 나이든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 들고 있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속도도 한파를 동반한 음력시월 스무날의 심한 추위만큼 빠르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외환위기 이후 잠잠했던 명예퇴직 바람이 다시 불고 경기침체라는 칼바람 속에 기업이 쓰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잃은 생산업체는 줄줄이 외국으로 떠나고 구조를 바라는 중소기업인들의 애처로운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종업원의 텅빈가슴을 때릴뿐이다. 최근 은행 등 금융권에 불고있는 구조조정바람도 심상치 않다.

일부 보험사들과 부실에 허덕이는 카드사들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은행은 인건비부담을 덜기위해 콜센터 자체를 중국으로 옮기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국내 상담원 월 급여가 130만원인데 중국에선 13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어서 통신비를 감안 하더라도 이익이라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고임금을 피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은행같은 서비스업마저 외국으로 이전을 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이땅에 기업과 공장은 없고 실업자만 가득할수 있다는 기우(杞憂)마저 생긴다.

실적이 좋은 기업들도 신규 채용 여력을 늘리고 조직을 젊게 만들기 위해 인력 감축에 적극적이다. 이래저래 내몰리는 계층은 중년들이다. 이달초 5천500명을 퇴직시킨 KT의 38세까지라는 명퇴신청 나이만 보더라도 '사오정'은 옛말이 됐다. 나이에 관계없이 수시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기업도 점차 늘고 있다.

혹독하리라는 예상은 벌써부터 자기자리를 잃은 아버지들의 양산이라는 외환위기때의 아픔으로 재현되고 있다. 물론 고통과 번뇌는 가족 모두의 슬픔이지만 그래도 그중심에서 항상 가정을 이끌어온 가장이 있었기에 아픔의 강도가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집 걸러 하나씩 명퇴자가 생겨났으며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났고 전국민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지난 외환위기시절, 명예퇴직 칼바람과 구조조정의 비정함을 아버지라는 정신적 가정의 지주와 접목시켜 사회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와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가 던진 메시지처럼 '아버지가 우는 불우한 시대'가 재현되는것 같아 심란하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자기 외투를 벗어 바람막이로 더욱 어려운 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매서운 바람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어려운 세상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이웃의 사랑이 필요할때다. 각박한 세상 어느 누가 베풀려고 하겠나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지만 어려울때 마다 보여준 우리 이웃들의 조건없는 사랑은 언제나 큰힘이 됐었다.

새삼 잭 캔필드와 마크·빅터 한센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생각난다. 무료급식 한끼의 식사가 많은 급식자들에게 사랑이 담긴 닭고기 수프이길 바라는 마음과 같이 실직으로 아파하는 많은 이웃들에게 맛있는 밥과 따뜻한 세상이야기로 닭고기 수프를 끓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이상의 분노와 좌절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준성(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