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류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가장 처음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로 알려져있다. 원숭이가 움푹 파인 곳에 저장해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된 것을 인간이 먹어보고 맛이 좋아 계속 만들어 먹었고 바로 이 술을 원주(猿酒)라고 했다. 최초의 과실주에서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한참 후에 알려진 제조술이다. 재미있는 현상 하나는 술의 원료가 주식과 밀업한 관계가 있어 어패류나 해수(海獸)를 주식으로 하는 에스키모족들은 술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전통술은 탁주·약주·소주로 대표된다. 이중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탁주에서 약주가 나왔으며, 이를 증류하여 소주가 만들어졌다. 일명 막걸리인 탁주는 우리 민족의 토속주로서 제조술에 따라 그 맛도 다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소주는 일반 양조주의 결점을 보완해 증류로 얻는 술로 선조들이 오랫동안 약용으로 귀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잘 먹으면 약이 되는 술이 때로는 독주로 변해 자칫 이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미 대중화되어버린 폭탄주가 세인의 도마 위에 올랐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감사원 직원이 취중에 옆사람과 경찰에 행패를 부렸으나 술 때문에 기억에 없다며 선처를 바라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사소한 일로 경찰에 불만을 품고 만취 상태로 차를 몰아지구대를 들이받아 한 인생을 담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 주변이 크게 병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정치권과 국정의 여러가지 난맥상으로 일대 혼란을 겪으며 평형심을 유지하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는 한치 앞이 안 보인다고 아우성이고 350만의 신용불량자와 수십만의 청년실업자가 양산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늘어만 가는 서울 도심 외딴 섬 쪽방과 노인 자살을 비롯해 급기야는 차량에 불을 질러 가족이 동반자살하거나 어린 자식을 아파트 난간에서 떠밀고 자신도 귀따르는 무모한 사거닝 잇따르고 있다. 예전엔 보도 듣도 못한 인터넷 자살 사이트가 유행병처럼 번진다고 한다.
중·장년의 기성인들은 언제부터인가 공동체적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폭력의 극단적 선택이 타인이 아닌 자신과 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경악스러울 뿐이다. 얼마전 가난의 대물림이 뻔한 황량한 빈곤계층의 두터움을 원망하며 죽음을 선택한 한 학생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가운데 독하고 씁쓸한 양주 얘기가 세간에 화제와 시기를 조장하고 있다. '로양살루트'라는 술은 1931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5살 때 21년 뒤에 있을 그녀의 대관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든 오크통에 보관해오다 21년 후인 1952년 대관식날 21발의 예포와 함께 최고의 경의와 품격을 갖춰 바쳐진 위스키로 유명하다.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255병만 생산된 이 위스키는 용량이 720ml로, 30ml 크기 위스키 잔으로 환산하면 1잔당 50만원 꼴이다. 우리나라에 20병이 배정됐고 물론 판매는 불티났다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와는 하등의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그 명주(?)의 유명세를 필시 서울 하늘 아래의 쪽방 노인은 로얄 살루트 50년산이 무엇인지 모를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야만 그들이 반평의 땅을 베고 단돈 1천원짜리 한 병의 소주에 의지한 채 편히 자는 자위의 이유라도 되지 않겠는가. 인간의 행복추구는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유명한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에게 욕망이 크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이가 들면 쇠퇴하고 노화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거늘.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가 보기에는 한낱 코미디로 보일지 모르지만 있는자와 가진자가 벌이는 작태는 분명 인간의 요강이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인철(논설위원)
술 한병과 쪽방 노인
입력 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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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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