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콤플렉스의 달 10월도 내일 모레면 꼬리를 감춘다. 올해도 노벨상은 한국인을 외면했다. 미국이 2백 하고도 수십 명, 일본이 10여명에다 베트남, 티베트, 나이지리아, 남아공까지 타고 부자(父子)도 타고 2관왕도 있는데 우리라고 하는 콤플렉스가 해마다 도진다. 하긴 단 한 번의 노벨상…2000년 6월 노구(老軀)의 DJ가 등이 휘도록 햇볕을 싸 짊어지고 불원천리 아들 뻘의 '장군님'을 찾아가 껴안은 공로로 바로 그 해 10월 평화상을 타기는 탔으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데 필자의 눈엔 노벨이라는 사람부터가 좀 그렇다. 그는 초등교육만을 받은 일개 공업 기술자와 화학자에 불과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고 무연(無煙) 화약을 개발해 영국, 독일 등에까지 공장을 세웠는가 하면 1886년 다국적 회사인 '노벨 다이너마이트 트러스트'를 설립한 웬만한 기업가일 뿐이다. 노벨이라면 다이너마이트부터 연상한다. 다이너마이트란 파괴와 멸망의 신이 보낸 선물이지 결코 평화의 상징은 못된다. 하기야 '건설을 위한 파괴'라는 역설이 나올 수도 있다. 아무튼 인류사상 가장 파괴 수단에 이바지한 사람이 노벨이고 전쟁 파괴에 가장 공헌한 사람이 노벨이다. 발명으로 치더라도 에디슨이 발명왕이라면 그는 '발명 장관' 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산처럼 쌓았던 돈을 굳이 인류에게 나눠주려 했다면 그 유언부터 달리 했어야 했다. "내 상을 만들되 '파괴상'은 몰라도 평화상은 만들지 말라. 모두들 낄낄거릴까 두렵다. 또 문학의 '문'자도 모르는 내가 문학상을 준다는 것도 좀이 아니라 아주 그렇다. 의학상도 그렇고…. 다만 화학상 정도면 적당하지 싶구나…" '노벨 평화상'이라니, '노벨 문학상'이라니!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정된 작가들도 된통 그렇다. 스칸디나비아 문학 전공자가 아니면 전혀 모를지 싶은 라게를뢰브, 하이덴스탐, 칼펠트, 라게르크비스트, 사크스욘손, 마르틴손 등이 놀랍게도 모두 스웨덴 출신 노벨 문학상 작가들이다. 반면 톨스토이, 입센, 체호프, 카프카, 릴케, 발레리, 말로, 프루스트, 제임스조이스, 버지니아울프, 서머셋몸, 마트트웨인, 토머스하디, 드라이저 등은 타지 못했다. 작품 수준도 거기서 거기다. 그래선가 사르트르는 아예 거절해버렸다. 주인공을 잘못 찾는 배달사고에 대한 불쾌감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올해 의학 생리학상만 해도 미국의 자기공명단층촬영(MRI) 장치 메이커 창업자인 레이몬드 다마디안 박사는 지난 9일자 워싱턴포스트와 10일자 뉴욕타임스에 배달사고를 질타하는 전면 광고를 냈다. 타야할 사람은 바로 자기라는 것이다. 이란의 에바디 여사가 탄 평화상도 그 나라 정부는 환영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고방식이 정부 정책과는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10억원이 넘는 상금에다 100년이 넘는 연륜만 쌓였다고 해서 더 없이 권위 있는 상이며 까무러치도록 놀랄 만한 상인가. 만약에 그만한 상금과 연륜의 셰익스피어나 괴테 문학상이 있다면 그야말로 명예와 권위가 한껏 어울리는 상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고 누군가가 아인슈타인 물리학상, 슈바이처 의학상을 창설, 그만한 상금에다 100년 세월의 더께가 얹힌다면 어떨까.

상금은 적어도 노벨상 못지 않은 권위의 상은 세계 각국에 쌨다. 이번엔 자크 피에르 아메트(Amette)의 소설 '브레히트의 애인'에 수여한 프랑스의 콩쿠르 문학상만 해도 금년이 100주년이다. 일본의 아쿠타가와(芥川)상도 68주년이다. 그들 수상자(受賞者)와 수상자(授賞者)의 자부심과 뿌듯함은 대단하다. 가뜩이나 앓고 있는 고질적인 한국병이 지겹게도 많거늘 해마다 10월이면 도지는 노벨상 콤플렉스, 계절병만이라도 떨쳐버렸으면 싶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