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취직해 새내기 직장인이 된 청년이 동네 가게집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조그만 회사라고 겸손해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표정이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며 '앞으로 큰 회사로 키우면 되잖아' 하면서 청년을 격려한다. 30여년 된 드링크제 TV 광고 '첫 출근'에 나오는 카피다. 큰 회사로 키우라는 아저씨의 당부는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관을 바로세워주고 취업의 희망을 주는 것같아 은근히 미소짓게 한다. 어떤 젊은이는 취업걱정에 마음이 무겁다가도 이 광고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요즈음 신문·방송을 들여다 보면 온통 '취업전쟁' 얘기로 떠들썩하다. 청년실업은 물론이거니와 40~50대 장년실업까지 걱정거리로 등장해 일자리 문제가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10월말 현재 정부가 추산한 실업자 70여만명 가운데 주당 18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불안한 취업자가 59만명, 아예 구직을 포기한 구직단념자 10만명, 4년제 대학 휴학생중 군복무자를 제외한 23만명을 포함하면 전체 실업자수는 165만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년간 24만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그래서 신문에는 취업경쟁이 전체적으로 87대1이니, 어느 회사는 320대1이라는 기록을 세웠다고 대서특필한다.
230여개 세계 여러 나라가 극심한 경제불황과 취업난을 겪고는 있다지만 현실만 탓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나 사회, 기성세대들 모두의 잘못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주변을 잠시라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니, 눈높이를 낮추어본다면 취업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중소기업에서는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소리도 들린다. 필자도 얼마 전 레미콘 공장장인 친구로부터 구직자 추천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4년제 대학 출신중 관리사원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지만 여러가지 조건을 다는 바람에 추천을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중소기업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직업은 생계수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까지 좌우하는 것이므로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취업 준비생들은 세상에 알려진 유명세만 믿고 회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 목표를 생각지 않고 외형상의 모습만으로 회사를 선택하다 후회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또 요즘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에 더욱 그렇다.
수백대1의 경쟁을 뚫고 취직한 첫 직장에서 얼마 되지않아 불만을 느끼게 된다면, 그리고 퇴사나 전직을 고민하게 된다면 크나큰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세대는 '직장'보다는 '직업'의 개념을 우선하고 있다. 직업의 숫자가 1만5천개라 하지 않는가. 내가 평생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보다는 직업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다. 대학을 졸업해 막연히 수많은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합격하는 곳에 가겠다는 평범한 생각은 곧 후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일하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직종에 대한 정의는 세우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고학력자의 ‘자발적 실업’이 높은 청년 실업률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눈높이를 낮추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적극 찾아나서야 한다.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은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높고 취업하고자 하는 의식이 부족해서이지, 결코 일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발상의 대전환을 해보자.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보자는 것이다. 만들어져 있는 '큰'회사보다는 작은 회사라도 꿈과 희망과 도전의식을 갖고 '큰'회사로 만들어가는 것도 젊음의 특권이자 도전정신이 아닐까. /이준구(논설위원)
"큰회사로 키우면 되잖아"
입력 200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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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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