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도 어느덧 저물녘이다. 연말이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과 해야 했는데 못한 일 들로 인해 누구나 심란한 상념에 젖기 마련이다. 그러나 새해가 있어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용기를 얻는다. 송구(送舊)의 상념과 영신(迎新)의 희망이 해마다 교차하면서 사람은 성숙해지고 역사는 발전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도 '송구의 상념'이 특별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선자로 영신의 희망이 그 누구보다 컸을테니 그렇다. 또 그 희망은 노 대통령의 것이자 국민 모두의 것이었다.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향한 희망의 대열에서 열외를 외친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1년 남짓 임기를 보낸 지금 많은 국민들이 열외를 자청하고 있다. 대통령 주가가 이를 증명한다. 취임 직후 90%에 달했던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최근에는 30%대로 급락했다. 위험한 낙폭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는 심기일전의 기회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대통령의 일생에서 송구의 상념이 그 어느 때 보다 깊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중에서는 현 정권을 'NATO(No Action Talk Only) 정권'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소리만 요란하지 하는 일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재임 중 '물(水) 태우'라는 별명을 달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 까지도 이 농담을 인용해 정권의 안위를 걱정했다니 희극이 아닐 수 없다.
임기 초반의 대통령으로서는 유례없이 저조한 지지율과 시중의 희롱거리가 된 정부의 무기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대통령의 연말 국정운영 구상, 즉 송구의 상념은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집중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탓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반성은 본인 탓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 대통령은 적대적인 정치를 해왔다.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주문한 여론을 외면하고 개혁 순혈주의에 집착해 모든 정치세력을 적으로 돌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집권 기반이었던 민주당을 분할 한 것은 가장 큰 실책이었다. 민주당을 개혁의 목자로 개종시키려는 노력도 없이 토사구팽 시킨 셈이니 파열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취임 이후 분당 논의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고, 분당 이후에는 배신자를 가리는 논란으로 지금까지 소란스러운 실정이다. 국회 제1당인 한나라당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대통령은 자신의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의회를 지배하는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희망대로 내년 총선 이후 국회를 주도한다 해도 야당이 협력의 대상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추종세력이 보여준 적대적 리더십의 가장 뼈아픈 결과는 국민들이 분열된 점이다. 시정(市井)에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와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과 지지정당 별로 나뉘어 말을 섞지 않는 적대적 기운이 넘쳐 흐른다. 부안 사태부터 이라크 파병문제에 이르기 까지 찬·반 논란만 있을 뿐 결론에 다다르기 위한 담론의 장이 실종된 상태다. 이 와중에 내수 부진으로 인한 불황국면이 장기화 되면서 살림까지 팍팍해졌고 그 결과가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표출된 것 아닌가.
연말이다. 노 대통령이 이쯤에서 민주주의 정치질서를 복원하는 것으로 한해를 정리했으면 한다. 우선 성급했던 재신임 의사를 철회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국정의 중심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어정쩡한 정신적 여당에게 실체를 부여해야 한다. 대통령제와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제대로 복구하고 나서야 야당과의 정상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세울 수 있다. 지금 노 대통령은 영신(迎新)의 희망을 품기 위해 송구(送舊)의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윤인수(논설위원)
대통령,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결단을
입력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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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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