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에서만 2년반 동안 나흘에 한 번 꼴로 가정집을 털어 수억원을 챙긴 뒤 이를 주택 건축비용으로 써온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이렇게 훔친 돈으로 은평구 응암동에 다세대 주택 2채를 지어 분양했으며 은평구 신사동에도 10세대 규모의 4층짜리 빌라를 짓고 있는 중으로 밝혀졌다. 낮에는 건축업자로서 지역유지 행세를 하고 밤만 되면 흉기를 들고 가정집을 침입, 강도로 돌변하는 이중생활을 해온 이 남자를 보며 요즘의 정치판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르고 협박해 재계로부터 차떼기 등의 수법으로 돈을 긁어 모으고 그 돈으로 다시 대선자금이라는 이름아래 사복을 채우면서 지구당에 배분했던 야당이나 대통령측근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 어두운곳에서 손내밀고 돈챙겨 공식적인 곳에 썼다는 노무현후보 대선캠프 관계자들 모두 이중생활을 해온 40대남자와 무엇이 다른지 혼란스럽고 종잡을 수 없다. 아무리 권력과 돈에 적당하게 순치되는 것이 현실정치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정치인들은 바뀌려하지 않고 있다. 야누스의 두얼굴 처럼 자신을 가린 채 돈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필요악이라고 스스로 변명해가며 부패의 연결고리를 점점 독버섯처럼 만연시켜오고 있다. 언제까지 이러한 정치권에 국민들은 분노해야 하는것인가.
물론 정치권이 변화를 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아 그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불법 대선자금관계가 불거졌을때 몇가지 정치개혁안이 나왔지만 정파간의 싸움에 휘말려 국회 상정도 해 보지도 못하고 표류하고 있어서다. 정개특위와 중앙선관위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정치개혁 제안인 지구당 철폐, 선거공영제, 후원회 폐지,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봇물을 터뜨렸던 각종 개혁안이 그렇고 국회의원불체포특권에 관한 법률, 정치자금법개정안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국민을 배신하는 정치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거를 통해 바꾸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진로 선택이 그들의 몫이듯 정치인 심판은 유권자 몫이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선진민주국가의 정치인들도 스스로 개혁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충격에 반응하고 적응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투표란 유권자들이 신뢰를 내고 희망의 싹을 사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이런 싹을 틔우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인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한국 사회의 모든 병폐가 정치인들에서 비롯된다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치인은 바뀌지 않고 있다. 선택하고 심판해야 하는 것이 유권자이면서도 항상 그대로다.
어떻든 국민들은 내년 총선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갖게 될 것이다. 기대한 희망이 꽃피기는 커녕 오히려 좌절만 늘어갈 때 배반당한 신뢰를 되돌려받고 싶은 심정을 행동으로 옮길 시기도 이때다. 내년 총선에서도 각당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선거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게 뻔하다. 요즘의 행태를 보면 더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만큼 낡은 사람, 부패한 사람, 부도덕한 사람, 무능한 사람은 새로운 사람, 깨끗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유능한 사람으로 바뀌어야하고 그 선택은 당연히 유권자의 몫이다.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현 정치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현 정치판의 몰골들이 싫다”는 저변의 소리가 나오겠는가. 새 시대에 맞는 새 정치판은 사람을 바꾸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국민들의 올바른 투표권행사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정준성(논설위원)
내년 총선에서 갈아치우자
입력 2003-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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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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