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새해 첫 화두(話頭)가 “공직사회가 언론에 포위돼 있다”였고 “그 포위선에 의해 국민과 분리돼 있어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포위'라는 군대 용어를 써가며 언론을 공직사회, 즉 정부를 공격하는 '언론군대'로, 특정 신문들을 A신문사단, B신문부대, C신문특전사 쯤으로 여기지 않나 싶다. 그런 그의 시각과 '극복'이라는 말엔 '언론군대' '신문부대'를 정부와 국민 사이에 끼여 마치 모세가 일으킨 기적의 파도처럼 양편으로 갈라놓으면서 전자 쪽만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성가신 존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배제해야 할 적(敵)으로 여기는 의중이 다분히 배어 있다.

그는 그의 뇌리에 어떤 극적인 장면을 띄워 올리며 그런 말을 했을까. 혹시 거대한 철옹성의 함락이냐 수성(守城)이냐를 놓고 방금 수천 수만 대군이 성을 포위한 채 격돌 직전에 있는 조선시대 역사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건 아닐까. 그럼 그 철통같은 성문 꼭대기 드높은 망루에 늘어선 장수들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선 눈부신 장수, 금빛 용 비늘이 번쩍이는 갑주에 지휘봉을 꼬나든 그가 바로 노무현 왕이고 그 아래 성을 에워싸고 방금 떨어질 '공격하라! 돌격하라!” 호령만을 기다리는 대군이 '언론군대'란 말인가.

그렇다면 뼈저리게 궁금한 게 있다. '언론군대'가 정부를 포위하고 모세의 기적 파도처럼 권부(權府)와 국민을 갈라놓았다면 함락이냐 수성이냐의 대전을 관망하는 국민은 어느 편에 손뼉을 칠 것인가 하는 그 점이다. 정부를 포위한 '언론군대'를 그르다고 여긴다면 저 권부의 성을 에워싼 그들에게 권율장군의 행주치마부대처럼 돌팔매라도 던져 공격을 막아야 마땅치 않겠는가.

또한 2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도 정부를 포위하고 공격만을 일삼는 '언론군대' 탓이고 작년 11월28일의 대통령 TV 대담 시청률 7.3%도 '언론군대'가 가가호호 전화라도 걸어 시청하지 말라고 말리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언론군대'도 아닌 대학교수들이 평가한 2003년의 '우왕좌왕'과 경제인들이 내다본 '오리무중'은 또 어떤가. “사사건건 트집만 잡는다”는 트집도 적절치 않다. 사패산 터널공사만 해도 '옥체'를 이끌고 몸소 불교 지도자들을 찾아가 풀어낸 공로는 높이 살 만했고 그래서 그가 보기에 미운 털이 가장 많이 박힌 모 신문까지도 사설로 써 칭찬하지 않았던가.

저학년 교과서의 원론(原論) 같은 말이지만 모든 권력자는 언론과 껄끄러운 관계라야 정상이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늘 권부를 포위한 채 공격하고 비판해야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루스벨트도 언론을 '눈에 날아드는 티끌'로 여겼지만 남 모르게 눈물을 닦아냈고 제퍼슨도 언론을 '무책임한 포화(砲火)'라고 했지만 언론에 맞포화를 퍼부어야 한다느니 언론이 정부와 국민을 갈라놓고 있다느니 그런 저학년 교과서 독자 같은 티는 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영국의 '선'지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지렁이'라고 했고 BBC는 그를 바람둥이의 성 관계에 빗대 '3분 짜리 남자'라고 했어도 그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놀라운 것은 나카소네(中曾根) 총리의 미간에 못을 박고 '증세(增稅) 없기'라는 표찰을 거는가 하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며 대형 전정 가위로 혀를 잘라내는 희화를 싣기도 했던 게 1986년 6월의 일본 신문이었다. 그랬어도 '총리 모독'이니 뭐니 하는 말은 새지 않았다. 딱 한 마디만 일러두고 싶다. '재유천하(在宥天下)'라는 장자의 말씀이다. '천하를 용서하는 자리에 있어라'는 뜻이다. 그래야 천하까지는 몰라도 한 뼘의 땅이라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