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 인사들에게 4·15총선은 그들의 정치 운명을 가를 '대박'과 '쪽박'의 기로가 될 모양이다. 그들 사이에서 '총선 올인(All in)'이 날마다 강조되고 있으니 그렇다. 이해는 간다. 이번 총선에서 취약한 집권기반을 전복하지 못한다면… 그들로서는 끔찍할 것이다. 금과옥조인 개혁은 표류하고 자신들은 소수 개혁결사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올인이다. 청와대와 정부 할 것 없이 당선의 싹수가 있어 보이는 인사는 무조건 징발하고, 대통령의 재신임도 연계시켜 보고….

그런데 정치는 올인의 게임이 아니니 문제다. 올인이 무엇인가. 도박꾼이 자신의 판돈을 다 걸고 나서는 최후의 승부수 아닌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건다는 의미는 그 한판으로 게임을 포기하려는 자학이 아니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가져오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안정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진 국가에서 올인 정치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갈라진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견제와 타협으로 국민 의사를 통합해 최선의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제도에서 올인 정치란 생각도 할 수 없는 반동적 언어다.

문제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당의장이 이끄는 열린우리당이 '총선 올인'의 각오를 나날이 새롭게 다지고 있는 점이다. 노 대통령이 솔선수범이다.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총선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수시로 외부에 전달되고 있다. 정 의장도 당의장 선출 직후 “법률적으로 대통령 임기와 총선은 관계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정당지지도에서 우리당이 1등하면 재신임된 것이고, 반대로 야당이 과반수 정당이 되면 엄중한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통령직을 건 총선을 예고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이 차떼기 정당(한나라당)과 지역주의 정당(민주당), 개혁주도 정당(열린우리당)을 심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렇게 해선 안된다. 여당이 아무리 총선에 올인을 해봐야 국민으로 부터 얻어낼 지지율은 한계가 있다. 민주 정치는 권력의 분점이 요체다. 일방이 독식하는 게임이 아니란 얘기다. 1등을 다툴 의미가 없는 것이 1등이 권력을 다 차지하는 것도 아니요, 1등이 마음대로 하라는 정치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직을 걸려 하고, 1등을 하지 못하면 개혁세력 전부가 주저앉을 것 같이 호들갑 떠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름아닌 개혁 순혈주의 때문이다. 자신들만 개혁세력이고 나머지는 모두 반개혁이라는 탈레반식 개혁 원리주의 때문이다. 도대체 4·15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찍어야 할 국민은 자신이 반개혁 세력이라는 양심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개혁이 우리시대의 명제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모든 정당에서 개혁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차떼기 정당인 한나라당도 개혁인사를 수혈해 면모를 일신해야 하고,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정당들을 실제로 변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총선 이후에는 진보적 개혁세력과 보수적 개혁세력이 개혁의 방향을 토론하고 속도의 완급을 타협할 수 있는 정치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개혁은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완성된 소수의 엘리트가 통치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고 민주적 가치에도 반한다. 지금 개혁 엘리트들은 개혁 가치의 독점을 포기해야 한다. 패도(覇道)적인 개혁론에 근거한 '총선 올인'은 또 다른 반동적 올인을 불러 개혁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고 지금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총선 올인' '올인 정치'는 시대착오적 표현이자 태도이다. 수정하기를 바란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