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정월. 신년휴일과 설이 한달내에 들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가 더욱 주름진 한달이다. 재래시장은 물론이고 영세 상인들은 요즘 같이 장사가 안돼 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것같다고 이구동성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대형 유통센터는 나름대로 수지를 올리고 있는 듯하다. 민족 고유 명절을 맞아 작지만 귀향길에 어른들에게 선물이라도 장만하는 모양이다. 토요일이 낀 5일 연휴는 달콤한 휴식을 꿈꿀 수 있는 대박(?)이다. 지금쯤 많은 국민은 고향길을 재촉하며 저마다 차량에 올라 있을 것이다. 꿈같은 설 휴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한해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해였다. 수년간 온 국민의 촉각을 곤두세웠던 북 핵문제는 별다른 해결점 없이 평행선을 달리며 언제라도 한반도의 위협이 될것인 양 크나큰 그림자로 남아있고, 대선이후의 정치권 혼란은 아무도 원치않는 이념의 양상을 띠며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켜 왔다. 최근들어 불법대선자금과 대통령 주변 비리 사건이 합세한 점입가경은 국민의 불만을 한층 높여 극에 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해는 우리사회의 세태를 반영하는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육이오(65세까지 일하면 오적), 삼팔선(38세 퇴직), 이태백(20대는 태반이 백수) 등 참으로 무수한 듣도 보도못한 절묘한 신조어를 창출해 내는 한해였다. 국립국어연구원은 2003년 일간지와 방송에 사용된 신조어를 모아 일명 '2003년 신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얼핏 살펴보면 내용으로는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새로 탄생한 단어 하나 하나에는 결코 재미만을 느낄 수 없는 개인에 따라서는 피와 고름을 짜는 너무도 가슴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가 있다.
그런 반면에 검사스럽다, 로또공화국, 반통령 등으로 시대성을 조소어린 희극화로 풍자한 용어도 난무했다. 하지만 신조어의 백미는 역시 코드라는 단어였다. 여러 뜻을 갖고 있는 외래어인 코드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며 갑자기 회자된 '서로 뜻이 같다'는 개념으로 쓰여졌다. 아무튼 별로 희망을 주지 못한 채 수많은 화두와 좋지않은 기억속에 회한과 탄식과 절망의 계미년은 이렇게 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올 국정 최우선 목표를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 실천 방안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8만개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 정부의 모든 역량을 경제에 맞춰 서민경제 회생에 주력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는 대중 서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수를 늘리겠다는 발상으로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기에 그렇다.
지난해 15∼29세의 청년층 일자리는 19만여개나 줄어 청년실업자만 해도 전체 실업자의 절반인 38만3천명에 이르렀다. 예삿일이 아니다. 지난해 3%대 성장을 했다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4만여개나 줄어 청년층 취업난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직장을 구하려다 포기한 사람을 제외해도 전체 실업자 수는 82만여명이나 돼 빈부격차를 악화시키고 있음이다.
이런 와중에도 노 대통령과 각정당, 정치인의 마음은 온통 4·13 총선에 가있다. 서로가 조금도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입만 열면 잘했다 못했다로 해가 저무는 4·13 총선 분위기는 또다시 국민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나 이런 이전투구 양상에도 국민은 민족 최대명절을 쇠러 변함없이 귀향한다. 이참에 시골 고향 부모 형제들과 함께 과연 선량이 누구인지 얘기해 보자. 그리고 선택은 자유롭게 서로에게 맡기자. 진정한 개혁이 조용히 무게있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멋지고 뜻있는 귀향이 되기를 민족고유의 갑신년 정월에 기대해 본다. /윤인철(논설위원)
귀향
입력 2004-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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