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때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다.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등 7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냈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좋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열자(列子)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국 조3모4(朝三暮四)나 조4모3(朝四暮三)이나 똑같은 숫자다. 그런 점에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수로 넘기는 데 곧잘 비유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조삼모사판 같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어차피 줄 걸 조금 앞당겨 준다거나, 줄 계획이라면서 생색을 낸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4년 주기의 한 판이다. 정치철새 또한 벌써부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꼭 4년전인 2000년 1월에 정부는 봉급생활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노인전문 인력은행을 설치해 고령화 사회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했다. 또 115만 농·어가에 대해 부채경감책을 발표하는 등 각종 사회복지대책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17대 총선을 80여일 앞두고 정부는 '정년 60세 연장' '고속철 4월1일 개통' '출산장려금 20만원 지급' '농지전용 확대' 등의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야당과 일각에서는 물론 '총선용'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사회·복지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나 예산편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총선을 목전에 두고 각종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고건 총리에게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정책홍보나 예산집행 등과 관련해 중립시비가 일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해 주목을 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들을 가능하면 총선 전에 다 시행하려고 한다. 그 대신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정책이나 국민들 사이에 이해가 엇갈리는 정책들은 결정을 아예 미루고 있다. 굳이 예를 들면 당장 해결해야 할 국민연금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온통 준다는 얘기 뿐이다. 아동수당, 공적노인요양보장제도, 출산전후 휴가급여 확대, 노인 일자리 30만개 창출' 등이 그것이다. 일부 정책의 경우 심지어 몇 년 후에나 가능한 장밋빛 청사진들을 3~4년씩이나 가불해서 발표한다. 막말로 받는 사람 기분좋게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는 정도가 아니라 향후 몇 년후부터는 매끼니마다 7개씩을 주겠다는 약속도 마구 한다. 집권당의 프리미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각 부처의 참고철에나 보관했던 듯한 설익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거나 예산상의 뒷받침 없는 정책들이 홍수를 이뤄 그 뒷감당을 어찌할지 걱정된다는 점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장밋빛 정책남발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정부 각 부처가 앞다퉈 선심성 의혹을 살 수 있는 백화점식 정책을 남발,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꼬집는다. 마찬가지로 이번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새로운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정책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본 철학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들도 총선을 앞두고 '장밋빛' 정책들을 쏟아놓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황급히 마련된 것은 분명히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국민들도 이젠 숫자놀음 식으로 치장된 복지정책이나 '朝三暮四식' 선심성 정책에 팔려 함부로 표를 던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정부나 정치권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준구(논설위원)
조삼모사(朝三暮四)
입력 2004-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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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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