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세계는 지금 달리 열풍에 휩싸여 있다. 초현실주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달리 이벤트'가 봇물 처럼 넘치고 있다. 고향인 스페인 피게라스의 '달리 시어터 미술관'에서 부터 마드리드·바르셀로나·로테르담·베니스·쾰른 등 유럽대륙 전역과 미국의 플로리다에 이르기까지 달리는 올해의 지구촌 문화인물로 회고될 예정이다. 스페인은 국가차원에서 '달리 100주년 위원회'를 조직했고,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지난해 10월 '달리 100주년 기념행사'의 공식출범을 선언하기도 했다. 달리 미술관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는 주정부가 앞장서 '2004 달리의 해' 행사를 지원중이라고 한다.
이제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자. 올해 우리 미술계도 두사람의 거장이 탄생 100년을 맞았다. 내고(乃古) 박생광과 고암(顧庵) 이응노 화백이 그들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달리와 같은 해에 태어난 두사람은 독보적인 화업(畵業)으로 미술계의 범위를 초월해 우리 현대 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장들이다. '내고'는 민족정서를 기반으로 채색화의 신경지를 이룩해냄으로써 수묵위주의 한국화에 채색화의 가치를 일깨워준 화단의 거목이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내고의 채색화는 그 화면의 강렬함 때문에 다른 작품과의 동반 전시가 어렵다는 평을 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의 작품 '전봉준'을 한쪽 벽면 전체를 할애해 따로이 전시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경기문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명성황후' '무녀' '무속' '마야부인' '보살과 여인' '이조여인' '청담대종사' 등 9점으로 전시회를 열어 스페인 문화계를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 중 명성황후는 한국판 게르니카라는 찬사까지 나왔다고 한다. '고암' 역시 두말이 필요없는 화단의 역사이자 전설이다.
문화사적 족적이 뚜렷한 '내고'와 '고암'이 동시에 탄생 100년을 맞은 올해 두 사람은 당연히 국가적 문화이벤트의 주인공이 됐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부는 조용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차원에서 '이응노 회고전'이 기획중일 뿐이다. 한나라의 문화행정 책임자들의 안목이 이정도에 그친다면 절망적이다. 현정부가 문화를 거론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그들에게는 '내고와 고암'이 '달리'만 못해보일지 모르지만,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페인의 발톱에도 못미치는 한국의 문화행정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다행인 것은 내고의 경우 그의 주요 작품 대부분을 소장중인 용인 이영미술관이 경기도의 지원으로 '박생광 탄생 100년전'을 착착 준비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박생광 탄생 100년전'은 이영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경기도박물관 공동주최로 추진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경기도가 주체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대가의 명품을 시기별로 망라해 소장하기란 행정력과 예산을 동원한다 해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도로서는 박생광이라는 문화적 명품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가 앞장서서 '박생광의 해'를 지정하고 대대적인 문화이벤트를 벌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문화적 소프트웨어가 바로 '박생광'이다. 박생광의 명품들이 그의 고향 진주도 아니고 화업을 완성해가며 말년을 보냈던 서울도 아닌 경기도 용인 땅에 고인 것 자체가 경기도의 축복이다.
스페인에 '달리'가 있다면 한국의 경기도에는 '박생광'이 있다는 문화적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는 한 지역공동체의 정신적, 정서적 수준을 반영하는 내적 가치이다. 스페인이 달리를 사랑하는 만큼 경기도가 박생광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서구문화에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문화의 역량과 가치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안목 때문이다. 이번에 경기도가 '박생광 100년전'을 통해 중앙 정부의 문화적 맹목(盲目)을 질타하는 통쾌한 문화행정을 펼쳤으면 한다. /尹寅壽<논설위원>
논설위원>
'살바도르 달리'와 '내고(乃古) 박생광'
입력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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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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