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1천만명 관객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는 '실미도(감독 강우석)'가 꿈의 기록인 '1천만명 관객'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대략 5천만명으로 환산했을 때 5명중 1명이 영화를 봤다는 결론이고, 여기서 어린이를 제외한다면 성인 3명중 1명이 이 영화를 감상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이 기록은 우리보다 3배의 인구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도 거의 돌파가 불가능한 수치로 평가되고 있다.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919년 김도산 일행의 연극과 영화를 접목한 연쇄극(키노드라마) '의리적 구투'가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지 실로 85년만의 일이다.

이로써 한국은 자국 영화 점유율 50%대에 1천만 관객 시대를 열며 세계 영화계에 유례없는 ‘신화’를 속속 탄생시키고 있다. 이제 영화산업이 문화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입증하는 쾌거로 볼 수 있다. 사실 80여년의 한국영화 역사 속에 우리나라 영화가 산업적이나 문화적으로 제대로 대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부족한 자본, 빈약한 기술, 미숙한 인력은 영화발전을 가로막는 현실적 제약들이었으며 일제의 식민지 문화말살정책, 남북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대립과 긴장, 군사 정권의 통제와 같은 환경여건들이 각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계기로 고급 인력과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안정적인 재원 조달 창구가 마련되면서 방화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들이 코스닥이나 거래소에 속속 등록되면서 거대한 자본이 유입된 것이다. 이 결과 한국영화의 질적 도약도 함께 이뤄져 외화에 익숙했던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기여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데다 우리 정서를 잘 반영해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제 영화가 일부 젊은 계층이나 마니아뿐 아니라 국민적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았다고 진단한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흥행 원인은 젊은층 중심의 영화에서 탈피해 중·장년층과 지방 관객들에게 골고루 호소력을 가진 영화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화는 산업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자본과 기술, 우수한 인력이 투입돼 만들어낸 한 편의 영화는 거대한 수익을 남긴다. 1천만 관객동원이라면 관객 1인당 입장료를 7천원으로 볼 때 700억원이 모인다. 웬만한 상장 기업의 1년간 매출액과 맞먹는다.

‘실미도’가 우리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가 생산유발액 1천35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 594억원에 이른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고 보면 뉴EF쏘나타 자동차(대당 1천491만원 기준) 3천620대를 생산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살인의 추억'은 303억원의 부가가치에다 중형 승용차 2천800대 생산 수준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한 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국산 자동차 100만대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지 않는가.

한국 영화산업은 올해도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총제작비 170억원이 들어간 화제작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 12일만인 지난 15일 현재 최단기간 관객 450만명 돌파기록을 세우는 등 또 한번 ‘대박’의 조짐을 보인다. 또 올 1월 한국영화 관객수가 324만2천7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영화의 흥행은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계속될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엊그제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영화계의 낭보도 잇따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이제 방화(邦畵)사랑에 나서자. 영화로 벌어들인 돈도 영화산업에 재투자해 창작의욕에 불타는 젊은 영화인을 길러내는 토양을 만들어 나가자. /이준구(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