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없다. 연일 터지는 각종 크고 작은 사건은 작금의 정치·경제·사회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짐작건대 아마도 더이상 보여줄래도 보여줄 사건 유형이 없을 듯 하다. 그중에서도 포천의 여중생 살해 사건이나 앞서 발생한 부천 초등생 2명의 주검은 오래전 미해결 사건의 유형과 흡사해 이땅에 있는 모든 모정의 가슴을 서늘케 만들어 주고 있다.
 
최근 유괴 납치·살해가 어린이와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포천의 여중생 살해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전국민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온 희대의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너무도 비슷해 동일선상에 있는 것인지 또는 모방범죄인지는 모르겠으나 또다시 국민을 전률케 하고 있다. 부천시 두 초등생 사건 또한 항거불능의 어린 생명을 무참하게 유린했다는 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흉악무도한 범죄다. 국가를 떠들석하게 만든 개구리 소년의 악몽인 것이다.
 
경찰은 실종신고를 받고도 이들이 고학년인데다 협박전화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단순가출로 오판했다. 결국 초동수사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일이 지난 다음에서야 부산을 떨며 전면 수사에 나서는 전형적 공통된 내용을 지니고 있다. 뒤늦게 여중생이 발가벗긴채 배수관에서 사체로 발견되고 초등생이 산속에서 엽기적으로 살해되어 나타나는 차마 눈뜨고 볼수없는 불행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됐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생활고와 가계파산 등으로 인해 극한적인 가족 동반자살이나 아동학대의 피해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의 보호를 위한 어떤 유용한 수단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와중에 발생하는 -유약한 어린이와 부녀자의 목숨은 물론이고 주변의 인명을 마구잡이식으로 앗아가는- 흉악범죄의 야만사회를 무방비로 방치하는 현실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엽기나 대형 사건·사고가 예고하고 찾아오거나 일부러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우연의 일치로 사회의 관심이 온통 다른곳으로 쏠릴때, 방심과 방관 또는 혼란이 이어질때 연이어 밀려온다는 사실은 오랜 경험과 역사흐름 가운데 읽을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결국 지금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끝없는 정쟁도 이런 범죄에 대한 책임의 한축임이 틀림 없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썽 싶다.
 
급기야 그저 평범할수 밖에 없는 통닭장사가 예기치 못한 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서민장사가 안되는데 또다시 불거진 조류독감이 대책없는 한가장의 아까운 목숨을 가져간 것이다. 이래 저래 드러나고 있는 저급한 사회현상은 불쌍한 서민만 죽터지는 꼴로 몸을 던져 사회의 불만을 대변하고 말았다.
 
과연 이들은 누구를 원망하며 고귀한 목숨을 던지거나 타인에 의해 강제로 숨져 갔을까. 수많은 서민들이 각종 이유를 들어 혼자 또는 가족을 동반한 자살이 속출하고, 특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악성 범죄에 완전 노출되어 있으나 현정부와 정치권은 앞으로 다가올 총선의 기선잡기에만 골몰, 올인작전으로 나서 그 어느곳에서도 서민 보호에 나서고 있다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사장의 관리 소홀로 인한 어린이 실족사, 부녀자들의 잇단 실종과 변사체 발견 등은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는지 조차 의문을 갖게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어느 죽음이 나름대로 소홀할수가 있겠냐마는 때로는 정말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한편의 소설같은 대목이 드러날때마다 국민의 좌절과 탄식은 깊어만 간다. 이들이 공포에 떨며 숨져갈때 이 사회를 원망하는 마음이 어떠했었겠는가는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