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강남 백화점 아동복 코너가 북새통이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입힐 옷을 사주려는 부모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40만원대 봄재킷, 21만원 하는 페라가모 구두, 19만원인 버버리 바지 매출이 30~40% 늘었다고 한다. 한 세트에 100만원하는 투피스도 팔려 나간다. 내 아이 기죽이지 않겠다는 부모 심정을 어찌 비난하랴만 입맛이 쓰다.
 
풍경 둘. 이른바 '왕따 동영상' 파문이 일었던 창원 P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자살을 했다. 가해 학부모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사건이 뒤늦게 수업중 촬영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남교육청이 재조사 결정을 내린 직후의 일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입맛이 소태다.
 
풍경 셋. 안양 충훈고에서 무더기 미등록 사태가 빚어질 전망이다. 2시간이 넘는 통학거리에, 아직도 공사중인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학부모들이 배수의 진을 쳤다. 딱하게도, 교육 당국 또한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벌써 몇년째 되풀이되는 고교배정파동인가 입맛이 쓰다.
 
통계 하나. 우리 나라 학부모들이 자녀 유학에 들이는 비용이 2조원을 넘어섰다. 이것만 해도 지난해 교육부 예산의 10분의 1, 무역흑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비공식적인 편법 송금액을 합칠 경우 5조원으로 추산된다. 내 돈 내고 내 아이 선진교육시킨다는 데 시비를 걸 수야 없겠으나 분명 뭔가 잘못돼 있다.
 
통계 둘. 우리나라 명문대 출신이 국회의원, 장·차관 등 고위직을 독점하는 비율이 미국의 20배나 된단다. 미국은 10대 명문대 출신이 상원의 경우 17%, 하원은 7.5%이지만, 한국은 3대 명문만 따져도 57%나 된다. 한국 학부모가 기를 쓰고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안달하는 현상을 이해할 만하다. 미국과 한국의 교육·사회 구조를 수평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분명 뭔가 잘못돼 있다.
 
통계 셋. 한국 고교생의 70%가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고, 이 가운데 7%는 슬픔, 절망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중증 아이들도 40%나 된다. 그들이 지옥에 갇힌 청춘인 줄이야 진작부터 모르는 바 아니었으되 이건 정말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있다.
 
가슴이 더욱 답답해 지는 까닭은 위에 든 풍경과 통계가 한국교육의 붕괴를 논증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풍경 셋은 엊그제 신문에 나란히 실린 기사들이요, 통계 셋은 지난주 잇따라 보도된 내용이다. 한국교육은 정말 갈 데까지 간 걸까. 정녕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진정으로 그러나,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교육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희망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나아가야 한다. 이 땅에 태어나 아이들 키우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는 한, 상처투성이 교육을 보듬어서 바로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함께 가야 한다.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우선 내 아이 적응시키는 일이 급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비겁한 변명일 따름이다.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자. 내 아이 좋은 옷 못입혀서 안쓰러워 하기 전에, 헐벗은 아이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내 아이 왕따될까 걱정하기 전에, 왕따 현상의 사회적 뿌리를 없애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2년 전 고교 재배정 파동 때처럼 내 아이의 불이익만 걱정하지는 않았는가.
 
말은 늘 정의롭게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우선 네 경쟁력부터 갖추라고 닦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던가. 나는 이 사회의 학벌지상주의, 승자독식체계에 얼마나 치열하게 저항해 왔던가. 0교시도 모자라 마이너스 1교시를 해야하고, 야자(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밤 12시에야 학교에서 돌아오는 고3 아이의 가슴에 어떤 멍이 들어있는지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양훈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