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엔 창조, 보전, 복원 3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문화재 창조부터 보자. 발칸반도의 루마니아는 놀랍게도 흡혈귀 드라큘라를 제재(題材)로 한 거대한 테마파크를 건설한다. ‘드라큘라’라면 아일랜드의 통속 작가 스토커(Stoker)가 루마니아 왕을 모델로 휘갈겨 쓴 한낱 괴기소설의 괴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런 픽션 속 인연의 끈을 붙잡아 문화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창조의 극성과 혈안(血眼) 농도가 그런 정도다. 독일도 아돌프 히틀러가 2차대전 말기 애인 에바 브라운을 부둥켜안은 채 관자놀이에 총을 쏴 자살했다는 베를린 시내 그 우중충한 지하 벙커를 역사 유적으로 지정한 지 오래다. 영국은 어떤가. 일본 근대소설의 아버지이자 일본 돈 1천엔 짜리에 모셔진 화폐인물 나쓰메소세끼(夏目漱石)가 1901~1902년 머물렀던 런던의 하숙집까지 문화재로 지정, 2002년 3월 제막식을 가졌다. 그의 집도 아닌 하숙집이라니! 그쯤 되면 ‘혈안’도 아닌 광기(狂氣)다. 그에 비한다면 자격 미달이다 싶은 원폭 돔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고 전쟁터까지 역사유적으로 지정한 일본의 문화감각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다음은 문화재 보전 보호다. 우리처럼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집 ‘소원(素園’과 빙허 현진건(玄鎭健)의 고택을 마구 철거하고 박목월의 집까지 때려부수지는 않는다. 문화대국인 인도는 마치 자기네들 좀 보라는 듯이 우리의 옛 조선총독부, 중앙청 건물에 해당하는 영국총독부 건물을 쳐부수지 않고 고스란히 영빈관으로 쓰고 있고 역사가 연천(年淺)한 미국에선 오래된 집이면 무조건 문화 유적으로 지정하는 안목을 꼬나든다. 전미(全美) 유적보존트러스트가 지정한 유적 중엔 굴을 따던 낡은 목선까지 끼어 있을 정도다. 더욱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일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일본 교토(京都)시의 한 여성이 사후(死後) 17억3천672만엔을 시 문화재 보호에 써 달라고 기부했다는 게 2002년 11월 13일 교토시 발표였다.
 
문화재 창조와 보전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또 복원이다. 불가리아가 ‘노아의 방주’를 복원하고 세계적인 관광특구 이집트가 기원 전 4세기의 서양 문명 구심점이자 고대 인류의 최고 지적 유산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무너진 지 장장 1천여년 만인 2001년 8월 복원한 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자금성(紫禁城)을 비롯해 공산혁명, 문화혁명 때 ‘까부순’ 숱한 문화재를 복원한 것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독일인들이 앞장서 복원한 것도 90점 짜리 문화감각이다.
 
한데 역사 유적과 문화재 복원엔 그 ‘복원(復元)’이란 말부터 무슨 뜻인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復元’이란 글자 뜻 그대로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려 창조함’이다. 외형은 물론 내부구조, 명칭까지 고스란히 재생하는 게 복원이다. 그런데도 한산도의 이순신 장군 사당 간판(편액)인 ‘忠武影堂’을 1972년 ‘忠武祠’로 바꾼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건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변조다. 더욱 한심한 건 대한민국 심장부, 정치 1번지에 거창하게 복원한 경복궁 정문하고도 문패 격인 ‘광화문’ 간판이다. 당초의 가로글씨 ‘門化光’을 한글 ‘광화문’으로 고쳐 단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문화재 변조의 망발이 아닐 수 없다. 40점 정도도 아닌 10점 짜리 안목으로 변조된 문화재 가치란 그대로 10점일 수밖에 없다. 마치 일본의 고적 이름을 ‘히라가나’로 발음만 적어 놓는 꼴이다. 왜 경희궁 정문 문패는 ‘門化興’으로 제대로 복원해 놓고서 ‘門化光’은 ‘광화문’인지 모를 일이다. 독립문공원에 복원한 ‘독립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광화문’과 ‘독립관’ 앞을 바람처럼 휙 스쳐 지나가기조차 몹시 싫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