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먹튀족 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매사에 자신의 실리만 챙기고 다른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리로 정의 되고 있다. 먹을수 있을때 무조건 먹고 보자는 식의 황금 만능주의 사회병폐를 풍자한데서 비롯된 비속어라고 보는 견해가 옳을듯하다. 도저히 감잡히지 않는 다른 여러 인터넷속 합성어들과는 달리 먹튀족은 그 뜻이 쉽게 풀린다. 먹튀족=먹고, 튀는, 족속… 이 얼마나 간결한가. 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도망치고 그 뒤 하나씩 시비가 가려지고 사건전말이 드러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먹튀족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용어가 무색하게 됐다. 왜냐면 먹고 도망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면 먹는 행위가 없어졌단 말인가. 단언코 그것은 아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비리의 마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이상 비리뒤에 세상의 그늘로 도주하지 않는다. 어리석게 도망치기 보다는 현장에서의 교란 작전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 미묘해짐에 따라 사회의 구조적 혼란은 더할 나위 없이 미로 처럼 얽혀 버렸다.
따라서 힘들여 바보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현란한 말솜씨와 간교한 논리를 내세워 끝없는 미로 속으로 원죄를 밀어넣어 버리면 그만인것이다. 이같은 수법은 특히 정치권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한마디로 튀는놈이 바보라는 초지일관의 자세를 견지하고 국민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늘 위풍당당한 자세로 발뺌을 하고 나선다. 어리석고 한 없이 바보같은 우리 국민들만 미로에 빠져 그들이 쳐놓은 그물속에서 놀아나기 때문이다. 설령 운 없게도 그들의 치부가 드러났다하더라도 이미 상대적 상황에 따라 적당한 핑계와 대책을 마련해 놓았기에 굳이 먹은 사실을 실토하지 않아도 일은 입맛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말만 잘하며 비리에 따른 처벌도 없고 국민은 난마처럼 뒤엉켜 있는 사실을 규명하기가 절대 쉽지가 않다. 결국 고르디오스의 매듭처럼 교묘한 게임에 빠져 허우적대다 나가떨어지고 만다. 이러다보면 진실은 사라지고 초점도 흐려지기 예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3·12 대통령 탄핵으로 한치앞을 가늠키 어려운 처지이다.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에 많은 국민들은 본의 아니게 시시각각 정국의 변화에 매달려 있다. 당장 개인 생업에 종사하며 가족을 거느려야할 가장이 분신을 시도하는 극한 행동을 서슴지 않으나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국민 생활에 별 영향없어 보이는 졸렬한 정치력을 두고 양분화된 흑백논리가 난무한데 이 모든것이 먹고 도망가지 않는 오염된 정치인들을 위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 나라 정치권 안중에는 과연 국민이 존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민경제의 파탄은 뒤로하고 하루가 멀다고 화려함 외에는 남는것이 없는 그랜드쇼를 전개하고 있다. 때로는 군중심리를 적절히 이용까지하며 아찔한 곡예를 서슴지 않는다. 진행자들이 한솥밥먹는 한통속들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희극의 장은 멈추지 않는다. 사회 혼란의 틈을 타고 산소 용접기를 차량에 싣고 다니며 가게를 털고 하룻밤에 맨홀 뚜껑 수십개를 훔쳐간다. 엽기적이다. 게다가 먹고 살기 어려운 서민들에게나 있음 직한 예기치 못한 자살이 등장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회 지도층 인사가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이 정도면 더이상 열거할 이유도 없다.
정치판의 서바이벌이 선량한 국민에게로 번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면 그 다음은 분명 대책이 없다. 이래도 정치판은 싸움만 할것인가. 정리해보자. 이제는 차라리 먹고 튀는 자(者)를 보고 싶다. 왜 못먹을 것을 먹고는 도망치지도 않고 그리 당당한지 원망스럽다. 이들이 도주라도 하면 판을 새로깔고 패라도 다시 한번 돌려볼텐데 말이다. 기왕 먹었으면 기회라도 주는셈 치고 속시원이 달아나 주면 그것도 고맙겠다는 생각이다. /윤인철〈논설위원〉
왜 그리 당당한가
입력 200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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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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