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겠지…그래서 실력 검증도 안 하고 학급 반장을 뽑았더니 의외로 또는 예상대로 성적이 평균 20점대까지 내려갔다. 그런 점수로는 반장 자격이 없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자 학급의 주먹 짱이 앞장서 반장 축출을 시도했고 상당수 아이들도 동조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 주먹 짱이라고 해서 성적이 좋을 리는 물론 없었다. “알아서 가져와! 아니면 코피 정도가 아니라 엉치뼈까지도 나갈지 몰라!” 해가며 부잣집 애들 돈 뜯어내기에 바빴던 A짱의 성적은 물론 그와 합세했던 B짱의 성적도 그랬고 출반(黜班)을 반대했던 C짱의 성적 역시 '고기서 고기'로 평균 20∼30점에 불과했다. 한데 그런 A짱과 B짱의 주도로 막상 반장 축출을 결의하자 담임 교사가 버럭 화를 냈다. “반장의 함량은 미달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학만은 안 된다. 네깐 놈들이 감히…”가 화난 이유 내용의 95%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주먹 짱들에 대한 담임교사의 앞 뒤 안 가린 감정적인 점수였다. 반장 축출을 결의한 A짱 B짱의 점수는 30∼20점에서 10∼5점으로 끌어내린 반면 반장 축출에 반대했던 C짱 점수는 성적에 관계없이 80∼90점대로 다락같이 올려버린 것이다. 그런 상상 밖의 높은 반발 점수를 C짱에게 매긴 담임교사의 처사에 여타 교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늘만 쳐다보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청사(靑史)에 두드러질 대단한 대통령이다. 당장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한다면 어떨까. 그야 엊그제의 20%대가 아니라 90%대까지 수직 상승할 것이다. 대통령 당의 C짱이 받은 반발 점수 90이 그대로 대통령 답안지이자 '반발 지지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사에 유례없는 단시일 내의 '역전 지지도'를 받은 대통령으로 '기네스 북'부터 올라야 할 것이다. 아니, 지난 1년간, 그리고 탄핵 정국인 현재까지 “노무현” “노무현”…전 국민의 열띤 찬반 토론에 주먹다짐 격론 소재로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우리 역사상 그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된 셈이다.
궁금한 건 노 대통령의 현재 표정이다. 대단한 탄핵 반대 여론에다 193명의 '악당'까지도 '사과'다 '철회'다 하는 이색(異色)음으로 칙칙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 소리까지 접하는 그는 '회심의 미소'가 아니라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홍소(哄笑)를 참느라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웃음의 성분비(成分比)는 그 것 말고도 무엇일까. 그의 당이 총선을 휩쓴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무엇부터 소신껏 배짱껏 손을 쓸 것인가 그 점부터 골몰하기에 염두(念頭)가 터져 나갈지도 모른다. 법을 전공한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사안은 무엇이 적법(適法)이고 악법이냐 그런 문제부터 정리, 대대적인 법 개정부터 서두르는 일이 아닐까. 그의 편 입지 확대와 강화를 위해선 그간 못마땅하게 여겼던 선관위법을 비롯해 집시법, 전교조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금지법 등 그들이 불편해 하는 법 조항부터 뜯어고칠 것을 그의 당에 명령할지도 모른다. 그런 저런 사태가 통과한 대한민국은 대체 어떻게 '일신(一新)'해 있을 것인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나와도 걱정이고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문제다.
여기서 떠오르는 건 중세 동화의 고전인 '피리 부는 사나이'다. 피리 소리로 동네 아이들을 홀려 미지의 동굴 속으로 데려간 '분딕'이란 이름의 그 사나이 유령이 이 땅에도 배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극한 염려다. 또 하나 영어의 cell은 '세포' 말고도 '작은 방'이나 '무덤'이라는 뜻도 있다. 이 땅을 숨쉬게 하는 건강한 세포들의 어처구니없는 변이(變異)에 대한 끔찍한 염려가 기우로 그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吳東煥(논설위원)
대단한 대통령…대단한 여론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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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3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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